러시아가 발트 3국과 폴란드 사이에 끼어 있는 자국 영토 칼리닌그라드에 핵탄두 탑재 가능 미사일을 배치한 사실을 직접 공개했다. 핀란드와 스웨덴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할 경우, 이곳에 핵무기를 배치할 수 있다고 공언한 지 20일 만이다. 유럽 주변국에 대한 핵 공격 위협 수위를 또 한번 끌어올린 것이다. 러시아 발트함대의 본거지인 칼리닌그라드는 미국·유럽 등 서방과 군사적으로 충돌할 경우 상대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러시아의 전략적 요충지다.

우크라 대통령 연설 듣는 덴마크인들 - 4일(현지 시각) 덴마크 코펜하겐 시청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대형 화면을 통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연설을 시청하고 있다. 이날 광장에서는 덴마크가 나치 독일서 해방된 지 77년이 된 것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77년 전 일어난 일(해방)처럼 유럽과 우크라이나의 평화의 꿈이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AP 연합뉴스

러시아 국방부는 4일(현지 시각) “칼리닌그라드에서 핵탄두를 실을 수 있는 ‘이스칸데르’ 이동형 탄도미사일의 모의 발사 훈련을 실시했다”고 발표했다. AFP통신은 “직접 발사가 아닌 컴퓨터상의 훈련이었으나, 가상 적국의 군사시설을 목표로 미사일을 조준하고, 공격 후 반격을 피하려 발사대를 직접 옮기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핵 공격을 실행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는 의미다. 칼리닌그라드에 핵탄두 탑재 가능 미사일을 배치한 사실은 서방 정보 당국을 통해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러시아가 이를 확인한 것은 처음이다.

AFP통신 등 외신은 이를 ‘러시아가 핀란드와 스웨덴에 보내는 메시지’로 해석했다. 두 나라가 나토에 가입하면 잠재적 핵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은 지난달 14일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하면 발트해에 핵무기를 배치할 수 있다”고 위협한 바 있다. 이스칸데르 미사일 사거리는 개량형의 경우 약 800㎞에 달한다. 폴란드, 독일, 핀란드, 스웨덴 등 발트해 주변 유럽 국가를 모두 타격할 수 있다. 러시아가 이달 중순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과 관련된 의회 표결을 앞두고 이 같은 입장을 잇달아 밝혀 주목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군사 지원이 이어지면서 전쟁이 장기화하자 핵 공격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군의 핵무기 공격 준비 태세 상향을 직접 명령했고, 서방이 병력 파견 등으로 개입할 경우 ‘즉각 보복 공격하겠다’는 정부 고위 인사들의 경고도 수차례 나왔다.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받은 러시아 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는 지난 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 언론 자유의 날’ 행사에서 “최근 2주간 러시아 TV에 ‘핵무기 사일로(격납고)의 문이 열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며 “러시아가 핵무기를 쓸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국영 ‘로시야1′은 지난달 28일 토론 프로그램에 칼리닌그라드에서 극초음속 탄두를 장착한 사르마트 핵미사일을 발사하면 런던과 파리, 베를린을 100~200초 만에 초토화할 수 있다는 발언 내용을 내보냈다.

한편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는 이날 격전이 이어졌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제철소 안에 있는 전투원들과 연락이 두절됐다”며 “러시아군이 포와 탱크, 전투기로 공격하고 있으며, 군함도 공격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그는 “아조우스탈에 아직 민간인 수백 명이 있으며, 그중 30명 이상은 아이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