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NYT)가 일본이 사도 광산을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나서면서 불거진 조선인 강제 노역 은폐 논란을 조명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AP 연합뉴스

NYT는 21일(현지 시각) ‘일본은 사도 광산의 역사를 보여주고 싶어한다. 단, 전부는 아니다’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 조선인 강제 노역의 현장이었던 사도 광산이 전후 75년이 지난 지금 다시 두 나라 역사 전쟁의 중심에 서게 됐다”고 전했다. 일본이 조선인 강제 노역 역사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은 채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자 한국이 이에 반발하며 이미 바닥을 친 한일 관계가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NYT는 “일본은 12세기부터 1989년까지 가동된 사도 광산의 기나긴 역사 중 에도 시기(1603~1867년)만을 세계유산에 등재하고자 한다”고 지적했다. 조선인 강제 동원이 이뤄진 2차 세계대전 시기는 포함하지 않겠다는 것에 대해 NYT는 “사도 광산의 역사를 에도 시기로 제한하겠다는 건 일본의 문화적 기억에 몹쓸 짓을 하는 것이라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고 했다. 일본 광산 역사를 연구한 데이비드 파머 호주 멜버른대 교수는 “한 나라의 역사를 모두 말할 때야 비로소 그 나라의 역사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NYT 는 조선인들이 강제로 노역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사도섬 주민들과, 조선인뿐 아니라 일본인들도 전시에 군수 물자 생산에 동원됐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도 전했다. 하지만 야스토 다쿠치 일본 역사학자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1940~1945년에 사도 광산에서 일했던 조선인 광부 1500여 명 중 100여 명의 기록을 검토한 결과 이들은 섬에서 탈출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다시 끌려와 강제로 광산에 투입됐다”며 “이는 명백한 강제 노역의 증거”라고 말했다.

이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에서도 강제 노역 역사를 은폐했다는 논란이 있어 사도 광산 등재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일본은 2015년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세계유산 후보로 추천하면서 조선인 강제 동원 문제를 포함한 시설의 ‘전체 역사’를 충실히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를 지키지 않아 지난해 여름 유네스코로부터 시정 권고를 받았고, 올해 말까지 이행해야 하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