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엘리자베스 홈즈 전 테라노스 창업자가 경제 잡지인 포춘지 표지 모델로 등장한 모습/조선DB
3일(현지시각)에 여자 엘리자베스로 보이는 홈즈가 유죄 평결을 받은 뒤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트위터

미국 실리콘밸리 역사상 최대 사기극을 벌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바이오벤처 테라노스 창업자 겸 전 최고경영자(CEO) 엘리제베스 홈즈가 유죄 평결을 받았다.

3일(현지시각) CNN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지방법원에서 12명의 배심원단은 홈즈에게 적용된 11건의 기소 죄목 중 4건을 유죄로 인정했다. 다른 4건에 대해선 무죄로 평결했고, 3건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배심원단은 투자자를 속여 사기를 쳤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유죄로 인정했고, 환자들을 기만했다는 혐의 관련해서는 모두 무죄로 평결했다.

이번 배심원단의 평결을 토대로 추후 에드워드 다빌라 미국 지방법원 판사가 나머지 혐의에 대한 유죄 여부와 형량을 최종 선고 한다.

홈즈는 평결 이후 가족과 함께 법정을 나섰다.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여자 스티브 잡스’ 테크 신화의 몰락

홈즈는 미국 나이로 19살이던 2003년 미국의 메디컬 스타트 기업인 ‘테라노스’를 처음 창업했다. 손가락 끝에서 채취한 혈액 몇 방울만으로 각종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획기적인 기기를 개발했다고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홈즈는 이 일에 전념하겠다며 다니고 있던 스탠포드 대학을 자퇴했다. 언론 인터뷰에는 애플의 전 CEO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키는 검정색 목폴라를 입고 나왔다. 게다가 당시 여성 스타트업 창업자가 흔치 않았기 때문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돼 업계 잡지 표지에 종종 등장했고, 그녀에게 ‘여자 스티브 잡스’라는 별명이 붙었다.

테라노스는 9억4500만달러(약 1조127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았다.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 월마트를 운영하는 월튼 패밀리 등 화려한 투자자 명단으로 이목을 끌었다. 한 때 테라노스 가치는 90억달러까지 치솟았다.

2015년 7월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부통령도 테라노스를 찾아 격려했다./조선DB

그러나 내부 고발자로부터 테라노스의 혈액 질병진단 기술이 “사기에 가깝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그녀의 신화는 무너졌다. 2015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탐사보도를 통해 그들이 개발했다는 기계의 정확성이 의심스럽고 실제로는 외부에서 사용하는 혈액 검사 기계를 이용한다고 폭로했다.

2016년 테라노스가 2년여간 진행한 연구는 모두 무효 처분 됐고, 2018년 검찰은 홈즈와 관계자들을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이후 테라노스의 기업가치는 ‘0′으로 추락했고 청산 절차를 밟게 됐다.

◇재판 보러 새벽 2시부터 대기줄…뜨거운 관심

검찰은 홈즈를 기소한 것은 2018년이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 홈즈의 출산 등으로 미뤄져 작년 9월 재판이 시작됐다. 재판에는 전 세계의 시선이 쏠렸다. 34명만 들어갈 수 있는 방청석 티켓을 구하고자 법정 앞에 새벽 2시부터 줄을 서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재판 과정을 촬영하거나 녹음하는 것이 금지 됐기 때문에 매 재판마다 그녀의 재판을 직접 보려는 사람들로 방청석이 꽉 찼다. 홈즈의 시아버지는 재판을 보러 방청석 끝에 앉았다가 정체가 탄로나 이후 법정에 등장하지 않았다고 CNN은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수십명의 사람들이 캘리포니아 산호세 연방법원 앞에서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재판장 밖에서 홈즈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예술가는 홈즈를 비꼬는 작품을 전시하며, 그녀의 상징인 금발 가발, 검정 터틀넥, ‘블러드(혈액) 에너지’라고 적힌 음료 등을 팔았다. 원래 갈색 머리였던 홈즈는 CEO로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테라노스를 창업한 뒤 금발로 염색했다고 한다.

이번 평결에 합의한 배심원단은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고 CNN은 전했다. 배심원단은 8명의 남성과 4명의 여성으로 이뤄졌다.

재판 중에 배심원은 3번 교체 됐는 데, 한 명은 재판 중 스도쿠(낱말 퍼즐)를 풀다 다른 배심원에게 걸렸고, 또 다른 한 명은 “불교 신자라 그녀가 감옥에 가는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심리적으로 엄청난 압박을 느낀다”며 배심원 자격을 포기했다.

배심원단은 3일 오전 재판부에 ‘3가지 혐의에 대해서는 도저히 만장일치로 의견을 내는 게 불가능하다’고 전달했다. 재판부는 “그래도 의견을 모아달라”고 했으나 이들이 같은 날 오후 다시 한 번 합의가 어렵다고 전하자 받아들였다고 CNN은 전했다.

3일(현지 시각) 캘리포니아 산호세 연방법원으로 들어서는 엘리자베스 홈즈(가운데)/A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