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공공 도서관이 톈안먼 사태를 다룬 소장 도서를 대거 폐기한 사실이 드러났다. 톈안먼 사태는 1989년 중국 정부가 수도 베이징 톈안문 광장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를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해 유혈 진압한 사건을 가리킨다. 톈안먼 사태에 관해 자유롭게 말하고 쓸 권리는 홍콩 언론 자유의 리트머스 시험지로 여겨진다.

홍콩을 상징하는 양자형기(洋紫荆旗)가 홍콩 도심에서 펄럭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홍콩 매체 홍콩프리프레스(HKFP)는 2009년 홍콩 공공도서관에 구비되어 있던 톈안먼 관련 서적 149종 가운데 29종이 현재 전량 파기돼 공공도서관에서 사라진 상태라고 21일 보도했다. 12년 새 톈안먼 관련 서적의 약 19%가 사라진 셈이다. 권 수로 따지면 전체 1412권 중 263권이 사라져 1149권이 남았다. 이 가운데는 시중에서 절판돼 더는 판본을 구할 수 없는 서적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 톈안먼 시위를 이끌었던 펑충더의 저서 ‘톈안먼 저널’도 이렇게 자취를 감춘 책 중 하나다. 그의 책은 현재 절판돼 서점에서도 구할 수 없는 상태다. 미국에 망명 중인 그는 “독자들은 내 책에서 중국 공산당이 민주화 운동을 탄압한 구체적인 방식과 저항 운동에 활용할 수 있는 전략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며 책이 절판된 것에 대해서도 “놀라지 않았다”고 HKFP에 말했다. 그는 “공공도서관에서조차 책이 사라진 건 중국이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으면서 홍콩을 있는 그대로 유지하겠다던 약속을 내팽개쳤다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그 외에도 톈안먼 사태를 촬영한 보도 사진이나 관련 기사 모음집 등도 공공도서관 소장 목록에서 사라졌다. 모음집을 발간한 시민단체 홍콩 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支聯會·지련회) 상임위원 막호이와(麥海華)는 “도서관에서 책이 사라진 건 몇몇 사람들이 톈안먼 사태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났고, 당시 언론 보도가 어땠는지 사람들이 모르길 바라기 때문”이라며 “책을 금지하는 것은 이 같은 역사적 사건을 홍콩인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기 위한 것”이라고 HKFP에 말했다. 지련회는 1990년부터 매년 6월 4일 톈안먼 추모 촛불행사를 주최한 단체로, 홍콩국가보안법을 앞세운 당국의 압력에 못 이겨 지난 9월 자진해산했다.

공공도서관에 남아있는 톈안먼 관련 책들도 쉽게 대여할 수 없는 참고 서적이 대부분이다. 언제든 서가에서 꺼내 대여할 수 있는 건 26종뿐이며, 나머지 94종은 30분 이상 현장 대기를 하거나 일주일 전에 사전 예약을 해야만 대여할 수 있다고 한다.

공공도서관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홍콩 정부 부처 강락급문화사무서 측은 HKFP 질의에 “공공도서관은 주기적으로 손상됐거나 참고 가치가 떨어지는 서적을 파기 처분한다”며 “홍콩국가보안법 등 현행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서적들 역시 대여가 금지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혔다.

앞서 지난해 홍콩에서는 민주화 활동가들이 쓴 책 9종이 홍콩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공공도서관 서가에서 제거됐다. 당시 강락급문화사무서 측은 “홍콩 내 공공도서관들이 이념이나 정치적 사상, 종교 등의 이유로 소장 도서를 검열해서는 안 된다는 유네스코 공공도서관선언에 따라 운영되지만, 소장 도서가 홍콩 법규를 위배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