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2015년 11월 13일 금요일 오후 9시. 파리 교외 생드니의 스타드드프랑스 경기장에서 독일과 프랑스 축구 대표팀의 친선 경기가 시작됐다. 프랑수아 올랑드 당시 프랑스 대통령도 그곳에 있었다. 경기 시작 후 17분쯤 지났을 때 갑자기 큰 폭음이 들렸다. 관중은 경기장 밖에서 폭죽이 터졌다고 생각했다. 3분 뒤 프랑스 대표팀 윙백 파트리스 에브라가 공을 잡는 순간, 두 번째 폭발음이 들렸다. 관중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당황한 표정의 올랑드 대통령에게 누군가 다가와 귓속말을 건넸다. 그러자 올랭드가 누군가와 전화를 하더니 경호원들과 함께 급히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두 번에 걸친 정체불명의 폭음은 경기장 입구에서 관중을 노린 자살 폭탄 테러였다. 스타드드프랑스에서 시작한 테러는 이후 약 4시간 동안 파리 전역을 휩쓸었다. AK-48 자동소총과 폭탄 벨트로 무장한 총 10명의 테러범이 11구의 바타클랑 극장과 10구의 프티 캉보주 식당, 11구의 라벨레퀴브 바, 레알 수퍼마켓, 그리고 볼테르 거리와 레퓌블릭 대로, 라퐁텐 거리 등을 차례로 돌며 6회에 걸친 자살 폭탄과 자동 소총 난사를 저질렀다. 모두 130명이 사망했다. 중·경상자도 413명에 이를 정도의 대참사였다. 프랑스 언론 매체들이 ‘검은 금요일의 대학살’이라고 표현한 이날 사건에서 희생자 못지않게 충격을 받은 이는 올랑드였다. 당시 대통령으로 테러 현장을 빠져 나와 100명이 훨씬 넘는 프랑스 국민이 테러범들의 손에 스러져 가는 상황을 4시간 동안 실시간으로 보고받으며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사건 발생 6주년을 앞둔 11일(현지 시각) 올랑드 전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다시 한번 그날의 혼란과 고통을 떠올렸다. 그는 이날 파리 테러 사건의 주동자로 체포돼 기소된 IS(이슬람국가) 소속 테러리스트 살라 압데슬람(32)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약 4시간에 걸쳐 증언했다. 압데슬람은 테러 당일 조끼에 설치한 자살 폭탄이 작동하지 않아 살아남았고, 벨기에로 도망쳤다가 126일 만에 생포돼 파리로 압송됐다. 나머지 9명의 테러범은 모두 당일 자살 폭탄 혹은 경찰의 저격으로 사망했다.

테러 사건 재판에 실무 책임자가 아니라 대통령을 지낸 인물이 증인으로 출석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프랑스 검찰의 증인 출석 요청에 올랑드 전 대통령의 법률 자문단은 “검토가 필요하다”며 부정적인 입장이었으나, 본인이 “출석하겠다”고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재판이 시작된 이후 프랑스 시민단체 등에서 “당시 올랑드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하고, 청문회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오자 증인 출석을 회피하지 않은 것이다. 2015년 테러 당시엔 사건의 야만성과 충격 때문에 올랑드 정부의 책임은 크게 거론되지 않았었다.

2015년 11월 벌어진 프랑스 파리 연쇄 테러 6주기를 맞아 지난 12일(현지 시각) 파리 바타클랑 극장 인근에서 무슬림 주민들이 추모 꽃다발을 옮기고 있다. 바타클랑 극장도 당시 연쇄 테러가 발생해 희생자들이 속출한 곳이다. 전날에는 당시 국가 지도자였던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이 유일한 생존 테러범 살라 압데슬람의 재판에 출석해 증언하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AP 연합뉴스

법정에 선 그가 처음 꺼낸 말은 희생자에 대한 위로와 사과였다. “오늘의 증언은 그날의 희생자와 그들의 가족, 그리고 그날의 참혹한 기억을 몸과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야 하는 생존자들을 위해서다. 당시 대통령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그날 우리의 대처에 조금이라도 의구심이 있다면 모두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 프랑스 언론은 “회색 양복을 입은 67세의 전직 대통령이 증언 내내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며 “당시의 기억을 하나하나 다시 꺼내는 것은 올랑드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올랑드가 증언대에 선 것은 피고인 압데슬람이 6일째 공판에서 “올랑드 당시 대통령이 시리아에서 IS를 공격했기 때문에 테러를 벌였으며, 올랑드는 자신의 결정이 초래할 위험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바타클랑 테러 현장에서 테러리스트들이 “(IS를 공격한) 당신들의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를 탓하라”고 외치며 총을 난사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도 있었다. 이는 당시 공연을 녹음하던 테이프에 기록됐다.

프랑스앙포TV는 “변호인의 증인 심문 도중 증거로 제출된 (바타클랑 테러 당시 녹음된) 오디오 테이프에서 자신의 이름이 울려 퍼지자, 올랑드 전 대통령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기도 했다”고 전했다. 피고 변호인이 “당시 테러 공격을 피하기 위해 당신이 가능한 모든 조치를 다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묻자, 올랑드는 “IS 조직이 시리아 난민에 섞여와 테러를 시도할 수 있다는 첩보는 있었으나, 끔찍한 비극을 사전에 막을 만한 결정적 정보나 사건을 예고하는 추가 정보도 없었다”고 했다. “범인 대부분이 시리아 공습과 관계없이 프랑스 내에서의 생활방식에 불만을 품고 테러를 저질렀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