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 루이비통, 생로랑, 로에베, 셀린느, 구찌, 버버리, 메종 마르지엘라… 이들 명품 브랜드의 공통점은 올해 추석을 맞아 ‘중국의 송편’인 ‘월병(月餠)’ 선물 세트를 출시했다는 것이다. 이들 브랜드의 월병 세트는 중국 내 충성 고객을 위한 선물로 매년 특별 제작된다. 월병 박스는 보석 상자, 랜턴, 장식품 등으로 재활용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티파니는 지난 17일 성공적으로 귀향한 중국의 유인 우주선 선저우12호를 연상시키는 ‘우주선 월병 세트’를 출시해 주목 받았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와 틱톡에는 ‘명품 월병’ 인증샷이 중추절마다 올라온다.
중국에서는 중추절(仲秋節)로 불리는 추석에 ‘월병(月餠)’을 먹는다. 보름달 모양으로 빚은 전통 빵이다. 밀가루나 보릿가루에 돼지기름·설탕·달걀을 섞은 반죽으로 피를 만들고, 소금에 절인 오리알 노른자·팥·녹두·견과류·말린 과일 등을 넣어 동그란 틀에 찍어낸 뒤 화덕에 굽는다. 선물로 주고 받는 음식이다 보니 비싼 가격으로 출시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라면 시장의 두 배인 중국 월병 시장
월병 시장은 중국에서 매년 팽창해 ‘월병 경제’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아이미디어 컨설팅에 따르면 2015년 중국 월병 시장의 규모는 약 2조2000억원이었지만 2019년에는 2조9000억원대로 몸집을 키웠고 지난해에는 3조 6500억원에 달했다.
올해 중추철 월병 매출은 코로나 회복세에 힘입어 4조원에 가까울 것이란 전망이다. 국내 라면 시장 규모(약 2조원)의 두 배 수준이다.
◇억소리나는 초고가 월병
시장이 거대하다 보니 매년 중추절마다 중국의 유명 빵집과 호텔, 식품 브랜드 등이 월병 세트 출시 경쟁에 뛰어든다. 차별화를 위해 고급 식재료인 바다제비집(燕窩)을 첨가하거나 송이버섯으로 소를 만든 월병 등도 내놓는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업체인 파리바게뜨도 올해 중추절을 맞아 알록달록한 포장이 특징인 월병 선물세트 5종을 준비해 예약 판매했다.
중국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고가 월병 세트로는 ‘스타벅스 월병’이 꼽힌다. 굿즈처럼 수집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2019년 스타벅스와 명품 브랜드 상샤(上下)가 협업해 출시한 한정판 월병세트는 23만원 고가였는데도 불구하고 ‘에르메스 월병’으로 불리며 전국적인 인기를 끌었다. 상샤는 프랑스 명품 에르메스가 중국 디자이너와 공동 설립한 패션 브랜드이다. 상샤 월병 세트는 월병 교환권, 찻잔, 향을 담는 향합, 이동용 작은 가방으로 구성됐다.
월병세트가 뇌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과거 초고가 월병이 등장하기도 했다. 2009년 하겐다스는 중국에서 한 상자에 무려 815만위안, 한화로 약 15억원에 달하는 월병 세트를 출시했다. 하겐다스 측에 따르면 이 월병은 도금 상자에 포장됐고, 초고급 손목시계와 액세서리 등이 포함됐다. 말이 월병 세트이지 사실상 초호화 선물 상자인 셈이다.
2013년에는 월병 상자를 순금으로 만든 16만위안(약 3000만원)짜리 ‘금 월병’도 등장했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집권 이후 반부패 바람이 불면서 초고가 월병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백화점 상품권처럼 통용되는 ‘월병 티켓’의 등장
최근 중국에서는 월병 선물 세트보다 ‘월병 티켓’이 더 각광 받고 있다는 현지 보도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백화점 상품권을 주고 받듯 월병 티켓을 선물하는 문화가 중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월병 티켓이 법망을 피하는 뇌물로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월병 티켓은 표면적으로는 월병을 교환할 수 있는 쿠폰에 불과하지만 실제로는 액면가의 절반 정도의 현금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유통 구조를 보면, 월병 제조업체는 100위안 짜리 티켓을 만들어 장당 65위안에 도매상에게 넘긴다. 시중에 유통된 월병 티켓은 가게에서 월병을 사는데 쓸 수도 있지만 월병 제조업체 측 브로커를 통해 현금화 할 수도 있다. 보통 100위안짜리 티켓 한 장이 40~50위안의 현금으로 교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