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이 블랙호크에 아프가니스탄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매단 채 상공을 나는 모습. /@breeadail 트위터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노획한 미국산 공격헬기 UH-60 블랙호크에 아프가니스탄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매단 채 하늘을 나는 모습이 포착됐다. 최근 시운전 영상을 공개한 데 이어 첨단 무기로 무장한 자신들의 모습을 재차 과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영국 인디펜던트 등 외신은 30일(현지 시각) 탈레반이 조종하는 블랙호크가 아프간 칸다하르 상공 위를 나는 모습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현지에서 다양한 각도로 촬영된 영상이 공유되고 있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블랙호크에 연결된 긴 줄에 한 남성이 힘없이 매달려있는 장면이다. 네티즌들은 해당 남성이 아프간인일 것으로 추측하며 “탈레반 조직원들의 스스로의 세를 과시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다만 매달린 남성의 신분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탈레반은 지난 25일에도 블랙호크를 시운전하는 영상을 공개했었다. 칸다하르 공항 착륙장으로 보이는 넓은 공간에서 블랙호크가 굉음을 내며 움직이는 모습이 담겼다. 탈레반 조직원인 듯한 2~3명이 이 과정을 바라보는 장면도 찍혔다. 촬영 내내 헬기는 바닥에서만 움직였고 실제 비행 모습은 등장하지 않았다. 영상을 공개한 트위터 계정은 “손상된 블랙호크가 칸다하르에서 수리됐다”는 글을 함께 남겼다.

앞서 백악관은 지난 17일 미국이 아프간군에 지원했던 블랙호크 등을 탈레반이 탈취한 사실을 인정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당시 브리핑에서 “모든 군사 물품이 어디로 갔는지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지난 20년간 미국이 아프간에 쏟아 부은 100조원 상당의 군사자산 일부가 탈레반 손에 넘어가게 됐다고 밝혔다.

아프간 현지에서 포착된 탈레반의 블랙호크 운전 모습. 아프간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줄에 매달려 있다. /트위터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탈레반은 소셜미디어에 미제 무기를 들고 있는 동영상과 사진 등을 꾸준히 공개하고 있다. 사진을 보면 탈레반 조직원들은 주력 개인화기인 러시아제 AK-47 소총 대신 M16 라이플, M4 카빈 등을 손에 쥐고 있다. 탈레반이 노획한 미제 무기에는 총기뿐만 아니라 군용 차량, 철갑탄, 강철심 탄환, 방탄 장비, 통신 기기, 야간 투시경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군용 헬기도 블랙호크를 포함해 100여 대에 달한다.

이에 따라 탈레반이 미국산 무기 중 일부를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에 판매할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또 이 과정에서 인접국인 파키스탄이 중개인 역할을 할 수 있고, 파키스탄 현지와 인도 등에도 무기가 흘러 들어가 테러에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 공화당 일부 의원들은 지난 23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탈레반은 많은 양의 미국산 무기로 무장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이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며 “탈레반이 적국들에 무기들을 판매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코노믹타임스 등 인도 언론도 25일 군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소총 등 미제 무기가 파키스탄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온다”며 “탈레반 승리에 고무된 파키스탄 내 테러 단체들이 이 무기들을 인도 내 폭력에 이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인도는 분쟁지역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상당수가 파키스탄 당국의 배후 아래 이뤄졌다고 보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 이미 군은 경계 상태에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미 국방부는 30일 아프간 주둔 미군 철수와 일반인 대피를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지난 17일간 군은 미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수작전으로 12만명이 넘는 미국과 동맹의 시민을 대피시켰다”며 “아프간에서 20년간의 우리 군대 주둔은 이제 끝났다”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