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왼쪽) 미국 국무장관이 25일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에서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수반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이 팔레스타인과 관계를 격상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의해 폐쇄된 예루살렘 주재 영사관 재개관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예루살렘 주재 영사관은 과거 미국과 팔레스타인과 외교 채널이었으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주이스라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면서 그 기능을 축소해 대사 관할하에 뒀다. 해당 조치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반발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예루살렘 영사관을 아예 폐쇄시킨 바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불안한 휴전 상황을 안정화하기 위해 중동 순방에 나선 블링컨 장관은 25일(현지 시각)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에서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면담한 뒤 “팔레스타인과 관계를 격상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영사관을 다시 열려고 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영사관 개관 시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블링컨 장관은 “아바스 수반에게 말했듯이 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및 주민과 미국의 관계를 재정립한다는 약속을 강조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 관계는 상호 간의 존중,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동등한 수준의 안보, 자유의 기회, 존엄을 누린다는 확신에 기반을 둔다”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해결 방법으로 ‘두 국가 해법’ 지지 입장도 재차 확인했다. 두 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전의 경계선을 기준으로 각각 별도 국가로 공존한다는 개념이다. 그는 “궁극적으로 유대 국가로서 이스라엘의 미래를 확인하는 동시에 팔레스타인이 주장하는 국가의 권한을 부여하기 위한 유일한 해법으로 보이는 두 국가 해법의 달성 노력을 재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또 “가자지구 재건을 위해 7500만 달러(약 842억 원) 규모의 개발경제원조를 의회에 요청하기로 했다”며 “이외에도 긴급재난 지원금 550만 달러(약 61억 원)와 팔레스타인 난민을 돕는 유엔 기구를 통해 3200만 달러(359억 원)를 지출할 것”이라고 했다. 블링컨 장관은 코로나 백신의 사각지대에 놓였던 팔레스타인 주민을 위해 국제사회로부터 150만 회 분량의 백신 기부를 추진하겠다고도 밝혔다. 다만 그는 가자지구 재건을 위한 이런 지원이 이스라엘의 존재를 용인하지 않는 하마스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의 선물 보따리는 팔레스타인 정국 주도권이 줄어든 아바스 수반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최근 무력 분쟁을 통해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신뢰를 얻은 반면,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는 아바스 수반의 존재감은 미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