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비상인 가운데 지난 14일 수도 도쿄에서 행인들이 도쿄올림픽·패럴림픽 깃발로 장식된 거리를 걷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18일 일본 내각부의 발표는 코로나 확산 저지에 실패한 스가 내각이 경제에서도 낙제점을 받고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내각부는 2020년 일본의 GDP 실질 성장률(속보치)이 전년 대비 -4.6%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올해 1분기 GDP 실질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1.3%로 나타났다.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1년간 GDP 실질성장률은 -5.1%라는 뜻이다. NHK는 “정부는 내년 봄까지 국내총생산 규모를 코로나 사태 이전 수준으로 되돌리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를 실현하려면 백신 접종을 조기에 진행해 감염 확산을 억제해야 한다”고 했다.

◇올림픽 앞둔 日 백신 접종률 5%…쿠데타 미얀마와 비슷

일본의 코로나 대책은 경제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일본은 코로나 4차 대유행 영향이 본격화한 지난 4월 25일부터 도쿄를 비롯한 전국 5개 광역자치단체에 긴급사태선언을 발령하고 국민 외출 자제를 호소하고 있다. 자영업자는 물론 백화점 등 대형 상업시설의 휴업도 요청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최고 7236명까지 치솟는 등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긴급사태선언 발령 지역과 기간만 확대됐다.

문제는 코로나 핵심 대응책인 백신 접종이 석 달째 지지부진하다는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17일 기준 일본 인구 100명당 백신 접종 횟수는 4.83회로 세계 140여국 중 135위다. 이는 쿠데타가 진행 중인 미얀마(137위·4.68회)와 비슷한 수준이다. 일본보다 열흘 늦게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한 한국의 접종 횟수는 9.12회(115위)다.

일본의 백신 접종이 느린 것은 일본의 뒤처진 행정 시스템 때문이다. 특히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협조 체계가 원활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세계적인 백신 물량 부족에도 일본 정부는 5월 초부터 화이자 백신 약 1800만회분을 전국 지역자치단체에 공급했다.

하지만 여전히 백신을 접종한 65세 이상 고령층은 100만명이 채 안 된다. 백신 접종을 담당하는 지자체가 공급받은 백신을 제때에 맞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예방접종법상 백신 접종은 지자체 관할이다. 그런데 일본의 47개 광역자치단체 중에서 대형 접종센터 공간이나 의료진을 확보한 지자체는 소수에 불과하다. 결국 정부는 도쿄·오사카에는 직접 대형 접종센터를 설치하고 자위대까지 투입하기로 했다.

백신 예약 과정에서도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5월 초 각 지자체가 전화 예약 접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전화 통화량이 급증하면서 일부 지역에서 전화가 일시적으로 먹통이 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돈을 받고 대리 전화 예약을 해준다는 업체까지 등장했다. 중앙정부가 관할하는 대형 접종 센터는 17일부터 인터넷으로만 예약을 받기로 했는데, 국민 개개인이 부여받은 ‘접종번호’를 가짜로 대충 입력해도 예약이 되는 게 언론에 드러났다. 악의를 가지고 중복 예약을 일삼는 사람, 실수로 번호를 잘못 입력한 사람 등을 걸러낼 장치가 없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도쿄올림픽 반대 시위 - 17일 일본 도쿄에서 도쿄올림픽 개최에 반대하는 시위대가‘올림픽이 가난한 이들을 죽인다’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15~1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도쿄올림픽을 연기하거나 취소해야 한다는 응답이 83%로 나타났다. /로이터 연합뉴스

◇10명 중 8명 “올림픽 재연기·취소 필요”…정부 사면초가

개최가 불확실한 도쿄 올림픽은 일본 국민을 곤란하게 만드는 애물 덩어리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15~16일 15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 10명 중 8명이 “올림픽을 재연기하거나 취소해야 한다”고 답했다. 올여름 개최해야 한다는 응답은 14%에 그쳤다. 특정 사안에 대해 일본 국민 여론이 이렇게 악화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같은 조사에서 스가 내각 지지율은 전달보다 7%포인트 떨어진 33%였다. 정부의 코로나 대응을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응답은 67%에 달했다. 다른 언론사의 여론조사 결과도 구체적인 수치에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경향이다.

올림픽 대표 선수들의 여론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은 코로나 치명률이 높은 고령층도 백신을 맞지 못하는데, 젊고 건강한 선수들이 먼저 백신을 맞을 경우 국민 반감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 때문에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오는 7월 말까지 65세 이상 고령층 3600만명에 대한 접종을 완료할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아직 이를 신뢰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