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미(美) 국가안보회의(NSC)의 한 당국자는 백악관 남쪽 공원 지대인 일립스 인근을 걷다가 원인 모를 이명(耳鳴)과 두통에 시달렸다. 어지러움과 메슥거림이 이어졌다. 2019년 11월 워싱턴 근처 버지니아주(州) 교외 지역에서 강아지와 산책을 하던 백악관 직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그는 “산책하던 개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킨 이후 머리가 극심하게 아팠고 얼굴이 저렸다”고 상부에 보고했다. 이들의 증상은 ‘극초단파(microwave)’를 이용한 고주파 공격이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 정부 기관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했던 ‘고주파 공격’에 대해 합동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미 정보 당국이 러시아 첩보조직인 정찰총국(GRU)이 배후에 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고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1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미 국가정보국장실(ODNI), 국토안보부 산하 사이버안보 및 인프라안보국(CISA) 등 18개 정보기관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일제히 GRU를 상대로 한 조사를 강화했다.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이 사안과 관련해 매일 브리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간 러시아와 중국 등 적성 국가가 연관돼 있을 것이란 관측은 나왔었지만, 개별 국가 및 기관이 특정된 것은 처음이다.

러시아는 5~6년 전부터 극초단파로 사람의 뇌를 노린 ‘고주파 공격 무기’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극초단파의 주파수는 매우 촘촘해 철제와 콘크리트도 뚫을 수 있다. 또 극초단파는 사람의 귀를 거치지 않고 바로 측두엽에 전달돼 뇌 신경을 손상시킬 수 있다.

앞서 2016~2017년 남미 쿠바 수도 아바나에 주재하던 미국과 캐나다 외교관과 가족 40여명도 비슷한 공격을 받았다. 처음엔 원인을 알 수 없는 이명과 구토, 두통 등을 통틀어 ‘아바나 신드롬’ 괴질로 불렀지만, 1년여 뒤에야 고주파 공격임이 드러났다.

한편 미 정보 당국은 최근 미국의 대형 송유관 운영사인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에 대한 사이버 공격에도 러시아 정부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동남부 지역 연료 소비의 45%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은 지난 7일 시스템 주요 파일을 암호화해 접근을 차단한 뒤 금품을 요구하는 ‘랜섬웨어(ransomware) 공격’을 받아 시설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브리핑에서 “해커들이 러시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러시아)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일부 책임이 있다”고 했다. 앤 뉴버거 백악관 사이버·신흥기술 담당 국가안보 부보좌관도 브리핑에서 “정보 당국은 국가 차원의 개입 여부를 확인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