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9·11 테러 용의자 등이 수감된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자들에게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쿠바 관타나모의 미 해군기지 내 수용소. /AP 연합뉴스

뉴욕타임스는 19일(현지 시각) 미 국방부가 이날부터 쿠바 미 해군기지 내에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 수감자들에게 모더나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미 국방부는 수감자들에게 백신 접종을 시작하기 몇 시간 전 이 같은 계획을 미 연방 하원 의회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9·11테러, 2002년 인도네시아 발리 나이트클럽 폭탄 테러, 2003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메리어트호텔 폭탄 테러 등에 연루된 용의자 40명이 수감돼 있다.

미국 정부는 관타나모 기지에 주둔하는 미군 가운데 백신 접종을 거부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수용자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건) 미국 국민인 우리 군을 보호하고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군사 재판을 하루빨리 재개하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 정부는 국제법상 수감자들에게 백신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수감자들도 백신 접종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관타나모 수감자 40명 가운데 몇 명이 백신 접종을 거부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미 국방부는 이미 지난해부터 관타나모 수용자들에게 백신을 제공하고자 했다. 관타나모 수용소를 관할하는 미 해군 남부사령부의 참모장은 지난해 12월 수감자들을 코로나 “고위험군”으로 묘사하며 국방부 부장관에게 백신 접종 승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지난 2월 수감자에 대한 백신 접종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미 의회와 9·11 테러 유가족 등이 자국민도 접종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모더나 백신 /AP 연합뉴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19일 기준 최소 1회 이상 코로나 백신을 맞은 미국 내 18세 이상 성인은 1억3099만5636명으로 전체의 50.7%에 이른다. 미 정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쿠바 미 기지에 있는 모든 성인은 군인이건 외국인 용역 직원이건 가릴 것 없이 모두 백신 접종의 기회를 부여받았다. 현재 관타나모 기지에만 미성년자 250명을 포함해 5500명이 거주한다.

코로나가 유행하며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던 테러 용의자들에 대한 군사 재판은 지난 1년간 사실상 중단된 상태였다. 코로나로 국가 간 이동이 통제되며 피고인 측 변호사들은 관타나모 기지에 올 수 없었고, 기지를 방문한 일부 변호사들도 마스크를 끼고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수감자들과 대화를 나눠야 해 실질적인 변론 준비가 불가능했다. 9·11 테러 용의자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와 4명의 공범에 대한 재판은 다음 속행 기일조차 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군사 재판을 기다리는 피고인들 가운데는 2002년 인도네시아 발리의 나이트클럽에서 폭탄 테러를 일으켜 200여명의 사망자를 낸 인도네시아 남성 ‘함발리’와 말레이시아인인 모하메드 파릭 빈 아민과 모하메드 나지어 빈 렙 등이 있다. 이들은 2003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메리어트 호텔 폭탄 테러에도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