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바다 건너서 야마토(大和)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24일 일본 야구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고시엔(甲子園) 구장.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봄에 열리는 고시엔 대회)에 처음 출전한 한국계 교토(京都)국제고가 연장 접전 끝에 시바타고(미야기현)에 5대4로 역전승을 거뒀다. 고시엔 전통에 따라 상대 팀이 부동자세로 경의를 표하는 가운데 교토국제고의 한국어 교가가 울려 퍼졌다. 앞서 1회 말 공격이 끝난 후, 모든 출전 학교 교가를 소개하는 전통에 따라 이 학교 교가가 처음으로 고시엔 구장에서 불려졌다. 두 차례 모두 NHK를 통해 일본 전국에 생방송됐다.

24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의 고시엔 구장에서 제93회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고시엔 대회)에 첫 출전한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시바타고(미야기현)를 5대4로 이긴 뒤 장내에 울려 퍼지는 한국어 교가를 듣고 있다. 교토국제고는 10회 연장전 승부 끝에 승리했다. /교도연합뉴스

삼루 측에 위치한 약 1500명의 교토국제고 응원단은 감격한 표정으로 교가가 방송되는 것을 지켜봤다. 이 학교의 왕청일 전 이사장은 “한국어 교가가 방송될 때 흐르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 대학 입학을 목표로 공부 중이라는 3학년 구로가와 아스카는 “고시엔 구장에서 교가를 듣게 돼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며 활짝 웃었다. 교토국제고는 오는 27일 2차전 시합을 갖는데, 이때에도 다시 교가가 방송된다.

선수 전원이 일본 국적인 교토국제고는 이날 6회까지 2대0으로 끌려갔다. 7회 초 만루 기회에서 3득점, 역전에 성공했다. 이후 시바타고가 1점을 만회해 연장전에 돌입했으나 10회 2점을 얻어 5대4로 승리했다. 박경수 교장은 “다른 학교와는 달리 운동장이 작아 외야 연습은 다른 구장을 빌려서 해왔다”며 “그런 상황에서도 고시엔에 진출해 1승을 거둬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교토국제고는 전체 학생 수가 131명에 불과하다. 이런 미니 학교가 일본의 약 4000개 고교 야구단32개 팀출전하는 고시엔에 외국계 학교로는 처음 진출한 데 이어 첫 승리까지 거둔 것이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고시엔에서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경기를 보기 위해 24일 아침부터 재일교포들은 전세 버스 20여 대에 나눠 타고 고시엔 구장에 집결했다. 오사카의 같은 한국계 학교인 건국, 금강학교도 학생들을 보내 응원했다.

일본고교야구전국대회(고시엔)에 첫 출전한 교토국제고등학교가 승리했다/ 이하원 특파원

1947년 재일교포들이 세운 이 학교는 1990년대 심각한 운영난을 겪었다. 학생 수가 줄자 학교를 살리기 위해 1999년 창단한 것이 야구부였다. 그때부터 야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오기 시작했다. 2004년 일본 교육법 제1조 적용을 받는 학교로 전환, 지금은 한국 교육부와 일본 문부성의 재정 지원을 받는다. 일본 학생이 60% 이상이어서 사실상 ‘한일 연합’ 성격을 갖고 있다. 당시 이사장을 역임한 이우경(87) 교토 민단 고문은 “학교의 성격을 바꿔 일본인 학생을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 ‘학교를 팔아먹는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며 “우리 학교 졸업생과 학생들이 한일 관계를 밝게 만든다는 생각을 하면 그것은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했다.

일반 관람객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이날 경기는 일본 경찰과 주일(駐日) 한국 공관이 긴장한 가운데 펼쳐졌다. 한국계 학교가 고시엔에 진출한 데 대해 일부 일본 우익은 반감을 보였다. 특히 ‘동해'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가 전국에 생방송되는 걸 문제 삼았다. 이 때문에 교토국제고는 일본 경찰에 학생과 선수 보호를 요청했고, 오사카총영사관과 고베총영사관도 경찰에 신경 써 줄 것을 요구했다. 이 학교 선수들도 ‘만약의 사태’를 우려, 기존과 다른 출입구를 통해 야구장에 들어가야 했다.

NHK는 교토국제고 교가를 방송하면서 ‘동해'를 ‘동쪽의 바다’로 번역한 일본어 교가 자막을 내보냈다. 하단엔 “일본어 번역은 학교가 제출했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박경수 교장은 “우리는 교가 음원(音源)을 제공했을 뿐, 그런 일본어 자막을 보낸 적이 없다”고 했다. 앞서 교도통신은 마이니치신문과 함께 대회를 주최하는 일본고교연맹이 ‘동해'를 ‘동쪽의 바다’로 번역한 일본어 자막을 만들어 NHK에 제공할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일본의 한 중견 언론인은 “학교가 그런 자막을 보낸 적이 없는데 NHK가 왜곡 방송을 했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학교의 김안일 야구부 후원회장은 “일본에는 다른 외국계 학교도 많아 영어 등으로 된 교가도 부른다”며 “70년 넘게 불러온 교가를 문제 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