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유명 포르노 잡지 ‘허슬러’를 창간한 래리 플린트가 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악명높은 음란물업자’이자 ‘표현의 자유 수호자’로 양극단의 평가를 받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플린트가 10일(현지 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사망 소식은 동생인 지미 플린트를 통해 확인됐고, 구체적 사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플린트는 보수적인 미국 사회에 ‘외설이냐, 표현의 자유냐'라는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974년 그는 ‘미국인의 성생활을 그대로 보여드립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허슬러'를 창간했다. 노골적인 성행위 장면을 실은 탓에 외설죄로 법정에 수차례 들락거렸다. 하지만 꿋꿋하게 스스로를 ‘미국 수정헌법 1조(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조항)의 수호자’로 칭해왔다.
1970년대 말 허슬러 발행 부수가 300만 부를 돌파하자 플린트는 본격 ‘성인물 왕국'의 제왕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 경쟁자들은 항상 외설을 예술로 가장했다”며 “우리는 어떤 가식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공격적인 성인물 사업은 보수 진영과 종교계의 큰 반발을 불러왔다.
그가 종교계와 가장 치열하게 맞붙었던 사건은 ‘허슬러 vs 폴웰’ 사건. 1983년 기독교 원리주의자인 제리 폴웰 목사는 허슬러의 성 상품화를 비판했다. 그러자 플린트는 폴웰 목사를 겨냥해 노골적인 성 패러디물을 잡지에 게재하며 반격을 시도했다.
폴웰은 허슬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1988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며 플린트의 손을 들어주었다. “공적인 인물을 비판할 권리는 미국 시민의 권리이고, 설령 그 비판이 증오나 악의에 의한 것이라도 ‘생각의 교환’에 기여하는 이상 불법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 판결은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이후 미국에선 창작물을 통해 유명인을 실명으로 비난하고, 조롱할 수 있게 됐다. 이 이야기를 다룬 1996년 영화 ‘래리 플린트’는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다.
플린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그는 ‘허슬러'에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의 성행위를 묘사했다가 백인우월주의자의 총에 맞아 일생의 절반을 하반신 불수로 살았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나체 일광욕 사진을 몰래 찍어 잡지에 실었다가 또 한 차례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플린트는 스스로를 ‘걱정 많은 외설물 행상’이라고 불렀다. 그가 1996년 발간한 자서전 제목은 ‘꼴사나운 남자 : 외설물 제작자, 전문가, 추방자로서의 나의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