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독일 총선을 앞두고, 총리 당선이 유력한 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 대표(현 총리)를 비방하는 동영상이 독일 소셜미디어에 퍼졌다. 자신을 의사라고 소개한 남성이 “메르츠가 과거 심각한 정신 질환으로 치료를 받았다”면서 각종 진료 기록을 제시하는 영상이었다. 하지만 이 영상이 러시아 세력의 개입으로 만들어진 ‘가짜 뉴스’로 밝혀졌다.
독일 외무부는 지난 12일 이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러시아가 지난 총선 때 허위 정보를 유포하고, 지난해 8월엔 독일 항공 관제 당국을 겨냥해 사이버 공격까지 했다”고 밝혔다. 독일 외무부는 러시아군 총정찰국(GRU)을 공작 배후로 지목하며 “러시아가 총선 개입뿐 아니라 독일 내정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불안정화를 시도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정보당국은 ‘스톰 1516’으로 불리는 허위 선전 조직을 활용해 서방 정치인을 비방하고, 선거에 혼란을 초래하는 가짜 뉴스를 체계적으로 유포한 것으로 조사됐다. 독일 총선 기간 녹색당 로베르트 하베크 당시 총리 후보가 우크라이나 정치인들과 함께 1억유로(약 1730억원) 규모의 대형 부패 사건에 연루됐다는 허위 뉴스도 퍼뜨렸다. 독일 당국은 러시아 IT 업체들이 독일 유력 언론사의 홈페이지를 그대로 모방한 이른바 ‘도플갱어’ 사이트를 만들어 우크라이나 지원을 비판하는 가짜 뉴스를 실어온 정황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것뿐 아니라, 다른 유럽 국가들에도 여론 조작, 사이버 공격, 단발적 테러를 가하고 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7월 영국·폴란드 등에선 미국행 화물기에 실릴 예정이던 DHL 택배 상자가 잇따라 폭발했다. 최근 유럽 정보 당국은 이 사건을 러시아의 ‘사보타주(파괴 공작)’로 결론 내렸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다. 폭발물이 실제로 기내에 실렸을 경우 비행기 추락 등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
앞서 열차 탈선, 쇼핑센터 방화, 댐 무단 방류, 식수 오염 의혹 등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여러 사건·사고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으며, 더 많은 사례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고 유럽 언론들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