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 개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9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시위대가 해외 출장 예정인 네타냐후 총리와 이스라엘 방문 예정인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을 겨냥해 벤구리온 국제공항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마비시켰다.
9일(현지 시각)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텔아비브 벤구리온 국제공항 진입 도로는 시위대 등이 타고 온 차량으로 사실상 마비 상태가 됐다.
시위대는 시위의 상징으로 국기를 단 차량을 도로 한복판에 세워둔 채 자리를 비우는 식으로 도로를 마비시켰다.
앞서 시위 지도부는 이날을 ‘저항의 날’로 지정하고 이탈리아 로마 출장에 나서는 네타냐후 총리의 일정에 맞춰 공항 인근 도로를 봉쇄하도록 했다. 시위대는 이날 중동 마지막 일정으로 이스라엘을 찾는 오스틴 장관의 동선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공항으로 가는 도로가 막히자 네타냐후 총리 부부는 예루살렘에서 공항까지 차량 대신 헬기를 이용해 이동했다. 오스틴 장관도 네타냐후 총리,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과의 회담 장소를 공항 인근으로 변경해야만 했다고 NYT는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시위대가 나라를 무정부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며 “이스라엘인 다수가 선거를 통해 결정한 것을 뒤집고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를 망치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란 경찰은 이날 공항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10여명, 예루살렘에서 8명, 텔아비브에서 25명의 시위 참여자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에서 9주째 이어지고 있는 시위는 네타냐후 정부가 ‘사법 정비’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사법부 무력화 입법에 대한 반대 움직임이다. 네타냐후 총리의 사법 개혁안에 따르면 의회는 단순 다수결로 대법원 판결을 뒤집을 수 있고, 판사를 임명할 권한까지 갖게 된다. 야당과 수십만명의 시위대는 “배임·뇌물 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는 네타냐후가 사법부를 장악하려고 무리수를 둔다”고 반발하고 있다.
국제사회 역시 네타냐후에 부정적이다. 이날 오스틴 장관도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민주주의는 모두 공고한 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 그리고 독립적인 사법부 위에 건설돼 있다”며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발언들 다시 강조했다.
한편, 이날 시위에는 3000여명에 달하는 예비군도 동참했다. 예비군 시위 참여자 수백명은 예루살렘이 있는 우파 싱크탱크 ‘코헬렛 포럼’ 건물을 둘러싼 채 시위를 벌였다. 코렐렛 포럼은 유대 민족국가 이념을 지향하며 2012년에 창설된 비영리 기구로 네타냐후 정부의 사법부 무력화 시도를 적극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부 도시 하이파 앞바다 등에선 소형 선박을 띄워놓고 해상 교통을 방해하는 시위도 벌어졌다. 해군 출신 예비역 군인이 결성한 시위 그룹 ‘더 브라더스 인 암스’(The Brothers in Arms)는 “독재하에서 바다는 봉쇄됐다. 수십년간 우리는 매일 밤낮을 이스라엘의 생명줄을 수호했다.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정부의 통제되지 않은 항해를 멈추기 위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