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전투기(FX) 사업을 추진 중인 일본이 2035년 배치를 목표로, 영국과 이탈리아와 손잡고 6세대 전투기를 개발하는 파트너십을 연내 체결하려고 서두르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가 27일 보도했다.
6세대 전투기는 미국의 F-22ㆍF-35, 중국의 J-20 전투기가 갖춘 지금의 스텔스 기능을 더욱 강화하고 음속(音速)의 5배로 나는 극초음속 무기와 적의 시스템을 무력화하는 전자파 공격과 같은 ‘지향성 에너지’ 무기를 장착하고, 인공지능(AI) 통제를 통해 드론(drone) 부대와 통합 전술을 할 수 있는 전투기다.
FT는 “3국의 FX 공동 사업 계획이 확정되지는 않았다”면서도, “3국은 최근 수개월 간 FX 공동 개발과 관련한 협상을 마무리 지으려 했지만, 적절한 시기를 찾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일본은 지난 7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암살되는 사건을 겪었고, 영국 정계는 리즈 트러스 총리가 지난 10월 취임 45일 만에 사임하는 혼돈을 겪었다. 이탈리아도 9월 말 총선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그러나 3국은 작년부터 꾸준히 FX 사업의 공동 추진에 관심을 보였고, 이제 올해를 한 달 남겨두고 파트너십을 공식화하려 한다는 것이다.
영국은 2015년부터 ‘템페스트(Tempest)’ 차세대 전투기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영국이 초기 개발을 주도하고, 이탈리아와 스웨덴이 협력한다. 영국의 대표적인 방산업체인 BAE 시스템스와 이탈리아의 항공ㆍ우주 방산업체인 레오나르도, 스웨덴의 SAAB가 참여한다. 영국은 프랑스ㆍ독일ㆍ스페인이 주축이 된 차세대 전투기 프로젝트에서 제외되자, 독자적인 개발을 서둘렀다.
영국은 최첨단 전투기 관련 기술을 계속 개발하고 보유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템페스트’ 개발에 나섰으나, 막대한 초기 투자 규모에 해외 파트너 국가들을 찾았다. 또 다른 나라와 협력하면, 수출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한편, 일본은 그동안 미국과 주요 군사 프로그램을 협력해 왔다. 그러나 FT는 “이 3국 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일본의 FX 프로젝트가 ‘템페스트’ 프로젝트와 합쳐지면, 전세계 국방 산업에서 일본의 역할이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은 북한의 핵무장, 중국의 타이완 무력 침공 가능성, 러시아 등의 요인으로 6세대 전투기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최첨단 기술은 공유하지 않는 미국에 좌절했다. 따라서 일본의 이번 공동 개발 움직임은 부분적으로는 해외의 첨단 기술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템페스트’ 프로젝트의 이탈리아 파트너 기업인 레오나르도 사의 영국 대표는 FT에 “미국 최첨단 전투기의 기술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동맹국들은 해외 다른 나라와 자유롭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은 차세대 전투기 개발 과정에서 보다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면, 급변하는 동북아의 지정학적 현실에서 첨단 군사 장비를 개발하는 국가적 능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우려가 깊다고 한다. 또 전투기 개발에서 ‘어느쪽이 주도권을 쥐느냐’는 국민적 감정도 작용했다.
일본은 1980년대 말 FX 사업 추진 때에도, 애초 독자적인 F-2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미ㆍ일 양국 간 무역 긴장 시기에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독자 개발을 포기하고, 지금과 같이 미국의 F-16 전투기에 기초한 F-2를 미쓰비시중공업에서 생산하게 됐다.
일본은 이번 FX 사업에서도 미국 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 했다. 그러나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계속 미국 회사를 선택하라는 압력을 받았고, 결국 일본은 2020년 FX 주관사인 미쓰비시중공업의 파트너로 F-22와 F-35를 만드는 미국의 록히트 마틴을 선택했다. 그러나 록히드 마틴은 일본이 F-22, F-35를 디자인한 미국 기술을 사용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렇게 되면 일본으로선 내부 작동 원리를 모르고 기능만 사용하는 이른바 ‘블랙박스(black box)’ 전투기를 생산해, 앞으로 자체적인 업그레이드를 할 수 없게 된다.
영국의 씽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전투기 분야 선임 연구원인 더글러브 배리는 FT에 “기술 접근 이슈는 미국과 동맹국 간에 계속되는 문제”라며 “미국은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라 할지라도 자국이 수십억 달러를 들여 개발한 기술에 접근하는 것을 원치 않지만, 가까운 동맹국들로선 매우 실망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FT는 일본은 록히드 마틴을 FX 파트너로 선정한 뒤에도, 계속 롤스-로이스 엔진을 제조하는 영국의 BAE 사와 논의를 계속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 영국은 이탈리아ㆍ일본과 미래 전투기 개발에 대한 분석을 함께 한다는 발표를 했다
FT는 “영국ㆍ일본ㆍ이탈리아 3국은 현재 공동 개발의 비용 분담, 일본 FX와 영국 ‘템페스트’와의 통합 정도와 같은 마지막 부분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은 내년도(~2024년 3월) 국방비 약 6조엔(약57조 6289억 원) 중 1432억 엔(약 1조3758억원)을 FX 개발 비용으로 책정했고, 영국은 ‘템페스트’ 초기 개발에 20억 파운드(약3조2225억원)를 투입한다. 개발 비용에 대한 압박감이 큰 두 나라는 이탈리아의 비용 분담 비중이 커지기를 기대한다.
FT는 “일본ㆍ영국 간 공동 개발의 초기 장애물은 서로 원하는 전투기의 사이즈가 다른 것이었으나, 이제 두 나라는 엔진ㆍ레이더ㆍ추진 기술 등 차기 전투기에 들어갈 모든 민감한 기술 영역을 함께 다룬다”고 전했다.
일본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미국의 방위산업체 관계자는 “중국이라는 더 강력한 나라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무기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현실적 목적보다도, ‘어느 나라가 전투기를 만들고, 어느 나라가 파트너가 되느냐’는 생각이 앞서는 것 같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FT는 “영국 방산업체 임원들은 영국이 역사적으로 첨단기술을 파트너 국가들과 공유해 왔지만, 일본이 영국ㆍ미국과 같은 수준의 보안 체계를 갖추지 못해 영국의 기술 공유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고 전했다.
또 어떤 전투기가 결과물로 나오든 미국 전투기와 합동 작전이 가능해야 해, 영국이 일본에 민감한 기술을 공유하면 미국이 개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또 미국이 중국이라는 공동의 적에 맞서는 영국과 일본의 협력에 반대하지 않겠지만, 결국은 어떤 방식으로든 개입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