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85)은 러시아 정교회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79)에게 “푸틴의 복사(服事) 노릇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가 3일 보도했다. 복사(服事)는 천주교 예배 의식에서 사제를 돕는 평신도를 뜻한다.
교황은 이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 3월16일 키릴 총대주교와 40분간 줌(Zoom)으로 얘기를 나눴다”고 공개했다. 그는 “키릴은 손에 든 종이에 적힌 내용을 따라 읽으며, 이 전쟁(우크라이나 침공)의 합리적인 이유를 댔고, 나는 다 듣고 나서 ‘그 중 어느 것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형제여, 우리는 국가가 임명한 성직자가 아니고, 예수의 언어가 아닌 정치의 말을 사용하면 안 되오. 우리는 모두는 신의 성직자’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교황은 또 키릴 총대주교에게 “우리는 평화의 대로를 추구해야 하고, 무기 사용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키릴에게 푸틴 대통령의 행동을 좇지 말라고 말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신문에 “키릴 총대주교는 스스로 푸틴의 복사(服事)로 변신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음날인 4일 러시아 정교회 측이 반박 성명을 냈다. “키릴 총대주교와 프란치스코 교황이 얘기를 나눈 지 한달 반이 지나서, 교황이 잘못된 어조로 대화 내용을 전달한 것은 유감스럽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키릴 총대주교 측은 교황에게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위협당하고, 서방이 소련 해체 이후에 나토를 확장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어긴 것 등 이번 전쟁의 원인을 들여다 보라고 권유했다고 밝혔다. 또 교황이 ‘예수의 언어’를 써야 한다고 말한 것은 총대주교도 동의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나라 국민의 대다수는 정교회 신도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교회 간에도 분열이 일어났다. 우크라이나 정교회 소속 320여 명의 사제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축복하는 도덕적 범죄를 저질렀다”며 키릴을 비난하는 공개 서한을 냈다. 키릴 총대주교는 과거에도 푸틴의 지도력을 놓고 “신의 기적”이라고 말한 바 있다.
키릴 총대주교와 러시아 정교회가 푸틴을 지지하는 주된 이유는 러시아 정교회와 푸틴이 모두 ‘동성애 배척’이라는 핵심 가치관을 공유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