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도, 중동에서 러시아가 지닌 영향력을 고려해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던 이스라엘이 “히틀러에게도 유대계의 피가 흐른다”는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말에 발끈했다.

발단은 라브로프 외무 장관이 지난 1일 이탈리아의 한 TV 채널에서 한 발언이었다. 진행자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대계인데, 어떻게 그가 나치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라브로프는 “히틀러도 유대계 피를 갖고 있었다. 젤렌스키가 유대계라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현명한 유대인들은 ‘가장 지독한 반유대주의자들은 대개 유대인들’이라고 말한다”고 주장했다. 라브로프는 유대계인 젤렌스키가 (히틀러와는 다른) 또다른 유형의 나치즘을 주창한다는 말도 했다. 나치 독일은 2차 대전 중에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다.

그러자, 이스라엘 정부는 러시아 대사를 소환해 해명을 요구하며 흥분했다. 야이르 라피드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라브로프의 말은 “치명적인 역사적 오류일뿐 아니라, 용서할수도 없는 언어도단의 발언” “유대인을 반(反)유대주의(antisemitism)의 범인으로 규정하는 최악의 인종차별주의 발언”이라고 맹비난했다.

◇논란의 핵심은 히틀러 친(親)할아버지의 정체

그렇다면, “히틀러의 몸에 유대인 피가 흐른다”는 라브로프의 주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는 모두 히틀러의 친(親)할아버지의 정체를 둘러싸고 번진 음모론이다.

1837년에 태어난 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는 친아버지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사생아였다. 히틀러가 '유대계 친할아버지'의 후손이라는 음모론은 여기서 비롯됐다.

1837년에 태어난 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Alois)는 친아버지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사생아였다. 그래서 히틀러가 1920년대에 정치적으로 힘을 얻어가면서 뮌헨의 카페에선 ‘히틀러의 친할아버지는 유대계’라는 소문이 번졌다. ‘히틀러’라는 이름도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에 거주했던 한 유대계 집안의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히틀러의 정적(政敵)과 언론 매체에선 이런 소문은 극에 달했다.

히틀러의 친할아버지를 둘러싼 소문은, 2차 대전이 끝나고 나치 전범(戰犯)이었던 한스 프랑크가 독일 주간지 슈피겔에 낸 회고록 요약본을 내면서 다시 퍼뜨렸다. 프랑크는 “내가 히틀러의 지시에 따라 은밀하게 그의 조상에 대해 조사 했었다”며 “히틀러는 당시 ‘유대계 피’ 때문에 한 조카의 협박을 받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프랑크 자신이 조사해 보니, 히틀러의 친할머니 마리아 안나 쉬켈그루버(42)가 1837년 오스트리아의 그라츠 시에서 ‘프랑켄베르거’라는 유대계 집안의 요리사로 일했는데 이때 아들 알로이스(히틀러의 아버지)를 낳았다는 것이다. 프랑크는 또 프랑켄베르거 집안은 알로이스가 14세가 될 때까지 히틀러의 친할머니에게 양육비를 줬다고 주장했다. 프랑크는 히틀러의 친할머니와 그 유대인 집안 간에 오간 편지들이 존재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은 이 주장에 회의적이다. 무엇보다도 프랑크의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가 전혀 없었다. 또 1837년엔 그라츠 시에 유대인이 거주할 수가 없었다. 유대인들은 그라츠 시에서 15세기에 쫓겨나서 1860년 경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히틀러의 친할머니 쉬켈그루버가 그라츠 시에 살았다는 기록도, 프랑켄베르거라는 이름의 거주 기록도 없다. 그 시기 비슷한 이름으로 ‘프랑켄푸르터’라는 성(姓)을 가진 집이 있었지만, 유대계가 아니었다. 알로이스 히틀러의 세례 증서에도 친부(親父)란은 비어 있었다.

그럼 히틀러의 친할아버지는 누구인가.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는 2일 “답이 없는 질문”이라고 단언했다. 그런데도 독일의 신(新)나치주의자들은 “히틀러에게 유대계 피가 흐른 탓에, 나치가 2차 대전에서 패배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일부는 “히틀러 스스로 유대계 피가 섞인 게 수치스러워, 잔혹한 유대인 학살을 했다”고도 한다. 이 모든 주장엔, 역사적 근거가 하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