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45) 프랑스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각) 실시된 프랑스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마린 르펜(54) 국민연합(RN) 후보를 17%포인트 차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지난 대선에서 역대 최연소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던 마크롱은 이번에 지난 2002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20년 만의 재선 대통령 탄생이라는 기록도 갖게 됐다. 프랑스24 TV는 “지난 1958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통해 제5공화국이 출범한 이후 원내 다수당이 배출한 첫 번째 재선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이날 대선 결선 투표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58.5%의 득표율을 기록, 41.5%를 얻은 르펜 후보를 꺾었다. 5년 전 첫 대결 때의 32%포인트에 비해 격차가 절반 수준으로 줄었지만 결선 투표 직전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예상됐던 12~13%포인트보다는 더 커졌다. 반면 기권율이 28%에 달해 1969년 대선의 31% 이후 50여 년 만에 가장 높았다. 르펜의 극우 노선뿐만 아니라 연금 개혁, 노동 시장 유연화 등 마크롱 정책에도 반대하는 좌파 성향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를 포기한 영향으로 분석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오후 9시 30분 부인 브리지트 마크롱(69) 여사와 함께 에펠탑 아래 마르스 광장에서 대선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나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극우의 당선을 막기 위해 나에게 투표한 국민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진영의 후보가 아니라 만인의 대통령, 모두를 위한 대통령이 되어 새 시대를 열어가겠다”며 “르펜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분노’에 대한 해답도 꼭 찾아내겠다”고 말했다.

유럽 주요 지도자들은 24일(현지 시각) 마크롱 재선에 대해 일제히 “프랑스가 하나 된 유럽을 선택했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프랑스 유권자들이 유럽에 대한 강한 헌신을 보여줬다”며 마크롱 대통령의 당선이 ‘유럽의 승리’라고 강조했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도 “마크롱 대통령의 대선 승리는 전 유럽에 좋은 뉴스”라고 했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마크롱 대통령 재선으로 우리의 협력이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프랑스 대통령이자 우크라이나의 진정한 친구인 에마뉘엘 마크롱의 대선 승리를 축하한다”며 “프랑스 국민을 위해, 마크롱 대통령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밝혔다.

유럽은 르펜 후보가 당선될 경우 당장 EU의 강경한 대(對)러시아 제재 연대가 무너질 것을 우려했다. 르펜 후보는 EU의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 조치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까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친분을 과시해왔고, “내가 당선되면 러시아와 관계 개선에 나서겠다”고도 했다. 이 때문에 유럽의 ‘반(反)푸틴 연대’를 대표해 숄츠 독일 총리와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안토니우 코스타 포르투갈 총리 등이 지난 21일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야욕에 대항하기 위해 강력한 EU가 필요하다. 마크롱 대통령을 지지해 달라”는 내용의 공동 서한을 싣기도 했다.

프랑스 내에서는 “국외의 반푸틴 연대가 실제로 르펜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르펜이 이번 대선에서 프랑스 극우 정당 역사상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푸틴이라는 변수가 결정적인 장애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지난 2017년 대선 결선 투표 때 르펜의 득표율은 33.9%에 불과했지만 이번에는 41.5%를 기록했다. 푸틴을 반대하는 국내외 세력은 똘똘 뭉쳤다. 푸틴 대통령의 정적인 러시아 야당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45)는 “르펜의 소속 정당 국민연합(RN)이 러시아의 영향력에 놓여 있다”며 “프랑스 국민들은 르펜에게 투표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결선 투표 전날에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RN이 지난 2014년 러시아 은행으로부터 받은 선거 자금 대출 채권이 러시아 군수업체에 넘어갔으며, 이후 대출 기간이 대폭 연장됐다”는 특혜 대출 의혹을 폭로했다.

프랑스 BFM TV 등은 “르펜 후보가 전체 유권자의 약 30%에 해당하는 1330만 표를 얻고, 30개 데파르트망에서 1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보였지만 ‘반푸틴’ 여론을 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푸틴이 마크롱 재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셈”이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