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6일 오전(미 동부시간) 미 의회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또다시 “우크라이나 하늘에 ‘비행금지구역(no-fly zone)’을 설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무고하게 희생되는 상황에서 “인도주의적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청하는 게 지나치냐”고 물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 군부의 ‘비행금지구역’ 불가(不可)입장은 지금으로선 확고하다. 젤렌스키도 이를 잘 안다.

그래서 젤렌스키의 이날 연설은 S-300과 같이, 러시아 전투기와 크루즈 미사일을 요격하는데 매우 효율적인 지대공(地對空) 미사일 시스템의 대폭 지원에 방점(傍點)이 찍혀 있었다. 그는 “만약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불가능하다면, 대안(代案)으로 S-300 요격 미사일 및 그와 비슷한 무기들을 보내 달라”고 말했다. 소련 시절인 1978년부터 러시아가 실전 배치한 S-300 시스템은 여전히 미사일‧전투기 요격에 뛰어나며, 현재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속한 구(舊)동구권 국가들과 그리스 등이 보유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도 계속 해서, 러시아 전투기와 미사일을 요격할 각종 방공 무기 지원을 더욱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나토의 ‘비행금지’ 집행 = 러시아와의 ‘전투’

최근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74%는 우크라이나 영공에 대한 ‘비행금지’ 설정에 찬성했다. 뿐만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시위 현장에는 ‘비행금지 설정’ 피켓이 꼭 등장한다.

15일 체코 프라하의 올드타운 광장에서, 우크라이나 침공 반대 시위자들이 나토의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구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12일 이스라엘 텔아이브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한 시위대원이 "4000만 명의 우리 가족을 위해서,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의 하늘을 닫아 달라"는 사인을 들고 있다./AFP 연합뉴스

미 의회 내 외교∙안보통이었던 조 리버먼 전 민주당 상원의원(1989~2013)과 같은 이도 ‘비행금지 구역 설정’을 찬성한다. 리버먼은 지난 9일 월스트리트저널 기고문에서 “비행금지 구역 설정은 민간인 구출을 위해 도덕적으로도 옳은 일”이라며, “푸틴이 제3차 대전을 일으킬까봐 두려워 행동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푸틴이 이 잔인한 전쟁을 이기도록 돕는 길이고, 중국같은 나라가 미국의 대응을 겁내지 않고 이웃나라를 침략할 수 있도록 부추기는 것이 된다”고 주장했다.

‘비행금지 구역’은 제1차 걸프 전쟁 뒤인 1991~1993년 미국과 연합국이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族)과 이라크 남부의 이슬람 시아파 인구를 보호하려고, 이라크의 남‧북부에 설정하면서 처음 효과를 봤다. 나토는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 때도 코소보 무슬림 인구를 세르비아계의 학살로부터 보호하려고 보스니아 영공 전체에 설정했다. 내전에 빠진 리비아에도 2011년에 설정했다.

당시엔 매우 유효했다. 자국에 ‘비행금지’가 설정된 국가의 공군력이 매우 미약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공군력을 상대로 ‘비행금지’를 강요하는 것은 얘기가 완전히 다르다. ‘비행금지’를 집행하려면, 나토 전투기가 우크라이나 상공에 떠 있어야 한다. 이는 러시아 전투기와 교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라크 북부 상공에서 비행금지구역을 책임졌던 미 예비역 공군 준장 데이비드 A 뎁튤라는 16일 “비행금지 설정은 핵우산과 같은 ‘보호 우산’이 아니라, ‘전투’ 행위”라고 말했다. 나토는 우크라이나 영공에서의 교전이 세계 최대 핵(核)보유국인 러시아 대(對) 나토의 전쟁으로 확산되는 가능성을 배제하려고 한다.

◇비행금지구역 설정해도, 러시아 포격은 못 막아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피난 통로가 되는 우크라이나 서부에 한해서만, 인도적(人道的) 차원의 ‘부분적’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우크라이나 북쪽의 벨라루스와 러시아에 위치한 방공(防空) 미사일 부대는 우크라이나 영공 전체를 커버한다. 이를 뻔히 아는 나토 전투기가 이 방공 시스템을 제거하지 않은 채 적(敵)의 자비심에만 안전을 맡기고 우크라이나 서부 영공에 들어선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피난민들이 이웃나라로 가는 주된 통로인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 한해서라도, '인도주의적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라는 요구가 많다. /구글 지도

비행금지구역 설정이 러시아군의 민간인 공격을 막는 데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현재 러시아 전투기들의 역할이 제한된 상황에서, 민간인 피해는 주로 포격(砲擊)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고의로 민간인을 공격하는 러시아 군이 ‘민간인 피난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서방이 설정한 ‘비행금지구역’을 존중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 전자 장비로 러시아 전투기의 이륙을 막는다?

미 의회 일부 의원들은 미사일이 아닌 방식, 즉 지상에서 전자파∙사이버(cyber)∙음파 공격으로 러시아군 전투기의 이륙을 막는 방식으로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존재하지도 않는’ 군사기술이라고 한다. 제이슨 라이얼 다트머스대 교수는 “그런 마술은 없다”고 했고, 미 공군의 전자전 정보 장교였던 덴버 리글먼 전 하원의원(공화)은 “멍청이의 헛소리”라고 비꼬았다.

전자 장비로 러시아 전투기의 이륙을 막아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다고? 전 미 하원의원인 공군 전자전 장교 출신인 덴버 리글먼은 "멍청이의 헛소리"라고 비판했다./트위터 스크린샷

이런 현실적 난제에도, 왜 많은 미국인들과 적지 않은 정치인들은 왜 비행금지구역 설정 방안을 좋아할까. 다트머스대의 핵무기 정치학 전공 학자인 닉 밀러 교수는 ‘단극체제 시절에 대한 미련(unipolarity hangover)’이라고 말한다. 즉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이 한동안 글로벌 질서를 위해 지구 어느곳이든 마음대로 개입할 수 있었던 단극체제 시절에서 물려받은 숙취(hangover)’라는 것이다. 단극체제 당시, 미국 정부는 해외 군사개입에 대해 그 ‘당위성’만 따졌지, ‘실현 가능성’은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컬럼비아대 리처드 베츠 교수는 최근 외교 전문지인 포린 어페어즈 웹사이트에 “푸틴은 나토의 ‘비행금지’라는 최후통첩 앞에서 물러서는 듯한 인상을 보이지 않을 것이며, 러시아가 비행금지를 준수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바로 나토 전투기는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영공에서 벌어지는 일이 곧 나토와 러시아 사이의 전쟁으로 변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행금지구역 설정은 ‘망상(delusion)’이라고 했다. 그는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 소련과 미국은 상대방 전사자를 초래하는 무기를 제공했지만, 확전을 우려해 직접적인 접촉이란 ‘문턱(threshold)’은 넘지 않았다.

6∙25전쟁 때 사실 일부 소련군 조종사들이 미그15기를 몰고 미군 조종사들과 교전했다. 그러나 소련은 이 조종사들에게 인민군과 중공군 복장을 입히고 중공 전투기로 위장한 미그기를 몰게 했다. 조종석에선 절대 러시아어를 쓰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종종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러시아어가 튀어나왔고, 미군은 이를 감청했다. 그러나 소련과 러시아는 지금까지 소련 조종사의 참전을 인정한 적이 없다.

◇ 폴란드가 자국 미그-29기를 우크라에 주겠다는데도…

젤렌스키 대통령은 16일 미의회 연설에서 또 “우크라이나를 도울 수 있는 전투기가 필요하지만, 이 전투기들은 현재 우크라이나 상공이 아니라 땅에 발이 묶였다”고 말했다. 폴란드가 애초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려고 했지만, 미국이 막은 소련제 미그-29기종(機種)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미국은 애초 폴란드 정부가 자국이 보유한 미그-29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내고 미국 F-16 전투기를 지원받는 방안을 내놓았을 때에 긍정적으로 검토했다. 미그-29기는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에게도 익숙한 모델이라, 별도의 훈련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8일 최종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고, 폴란드도 이후 이 아이디어를 접었다.

폴란드가 이 미그-29기들을 먼저 독일의 미 공군기지인 람슈타인 기지로 보내 여기서 우크라이나로 띄우는 방안을 고집하면서 우선 틀어졌다. 미 공군기지에서 뜬 미그-29기가 우크라이나 상공에 진입하는 순간, 미국과 나토의 전쟁 개입이 된다는 게 미국의 반대 논리였다. 이후에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와의 국경 지역에 옮겨 놓으면,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이 와서 몰고가는 방안, 분해해서 부품 상태로 국경을 넘어간 뒤 우크라이나에서 다시 조립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지만 모두 여의치 않았다.

우크라이나 조종사 중에 폴란드로 와서 그걸 몰고갈 잉여 자원이 있는지, 폴란드 미그기의 현 상황이 전투에 적합한지, 우크라이나에 미그기를 분해-조립하고, 출격 후 매번 이 전투기들을 관리할 능력이 있는지, 미그기에 들어갈 추가 부품을 조달할 자원이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