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2000명의 미군 병력을 폴란드와 독일로, 독일 주둔 미군 1000명을 루마니아로 전진 배치했다. 앞서 미국은 지난달 24일 미 본토 병력 8500명에 대해 ‘이동 대기’ 명령을 내렸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이 미국과 유럽 30개국으로 구성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의 충돌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군은 돈이 없어 군 장비 부품을 팔아먹고, 탈영병이 속출하던 ‘당나라’ 군대였다. 그러나 푸틴 집권 20여년 만에, 러시아 군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군대 중 하나로 거듭났다.
◇러시아군, 소련 붕괴 후 겉만 핵(核)무기로 포장한 ‘속빈 강정’
소련 붕괴 후, 러시아군은 지리멸렬했다. 월급을 줄 수 없어 탈영병이 속출했고, 일부 지역에선 징집제도 포기했다. 노태우 정부에게 빌려간 차관을 갚지 못해, 1‧2차 불곰 사업(1995~2006년)을 통해 일부를 TU-80U 탱크와 ANSAT 헬기 등 방산(防産) 물자로 상환하던 시절이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만들던 방위산업체가 자금이 달려 철도역의 열차 도착‧출발 시간표를 제작해 팔았다.
심지어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이 된 2000년 8월에도, 노르웨이 북쪽 바렌츠해에서 핵잠수함 쿠르스크호가 장착된 어뢰 폭발로 118명의 승조원이 수장(水葬)되는 참사를 겪었다.
2006년 푸틴은 러시아 의회에 “1996~2000년, 단 한 척의 전함도 건조할 수 없었다. 체첸의 이슬람 분리주의 반군을 진압하려면 최소 6만5000명이 필요했는데, 전체 140만 명의 러시아 병력 중에서 전투능력을 갖춘 병력이 5만5000명에 불과했다”고 보고했다. 체첸 반군을 진압하기까지 5년 반이 걸렸다. 심지어 2013년까지도 두툼한 군용 양말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러시아 병사들은 양말 대신 천(포르티얀스키)으로 발을 둘러야 했다.
◇러시아군 현대화의 전환점이 된 2008년 조지아 전쟁
푸틴에게 쿠르스크호 침몰이 첫 번째 충격이었다면, 불과 5일 동안 전개된 조지아와의 전쟁은 러시아군 현대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터닝포인트였다. 파이낸셜타임스와 뉴욕타임스 등에 따르면, 러시아 지상군은 공군과 서로 무선 송수신이 안돼, 러시아 전투기 수 대가 러시아군에 의해 격추됐다. 군용 통신이 수월치 않아, 전장에서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했고, 탱크와 장갑차는 고장이 잦았다.
◇대대적인 군개혁
결국 푸틴은 사단 수 축소‧지휘계통 단순화‧직업군인 집단 강화‧징집제 축소 등을 골자로 한 대대적인 군 개혁을 시작했다. 직업군인들의 연봉과 복지혜택을 강화했고, 일반 병사들의 징집 기간은 2년에서 1년으로 줄였다. 그 결과, 러시아군에서 징집 병사의 비율은 50%에서 30%로 내려갔다. 전체 90여만명 중에서 직업군인이 40만 명 선이다.
군 기지마다 체육시설과 수영장, 장애물 코스, 사격장을 설치했다. 모스크바 소재 국영 금융대학의 올레그 마트베이체프 교수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진짜 군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도록 했다”고 말했다.
2012년부터는 핵미사일의 성능 개선과 항공우주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때마침 유가가 뛰면서 러시아 재정도 나아졌다. 2018년 푸틴은 미국의 요격망을 무력(無力)화할 수 있는 극초음속 대륙간탄도미사일인 ‘아방가르드’를 선보였고, 최첨단 스텔스기도 탐지‧요격할 수 있다는 S-400 방공(防空)시스템도 실전 배치했다. 최근 10년간 SU-35를 비롯한 1000기의 최신형 전투기를 배치했다.
◇러시아 군 실전 경험과 전술 연마의 ‘실험실’ 된 시리아 내전
지난달 러시아 공수부대(VDV) 병력은 카자흐스탄에 투입돼 10일 만에 친(親)러 정권을 지켜내고 떠났다. 러시아의 VDV 병력은 세계 최대 규모다.
러시아 군이 이렇게 효율성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 탈환과 우크라이나 동부 친러 반군 거점 지원, 2015년 시리아 내전에서 정부군 지원,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개입 및 평화유지 임무 등을 통해 충분한 실전(實戰) 경험을 쌓은 덕분이었다.
특히 시리아 내전 개입은 갈고 닦은 전술과 정밀타격 무기, 무인 드론 등을 테스트하는 실험실이었다. 6만여 명의 러시아 병력이 실전 경험을 쌓았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작년 12월 21일 “많은 결정 권한을 하급 장교들에게 위임해 자율성을 강조했고, 현재 육군 지휘관 전원, 공군 조종사의 92%, 해군 조종사의 62%가 전투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화력‧정보왜곡 선전‧사이버 전투가 결합된 ‘하이브리드’ 전쟁
푸틴은 이런 막강한 화력을 바탕으로, 이제 우크라이나를 다시 러시아 영향권에 두려고 한다. NYT와 FT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경에 밀집한 러시아의 T-72B3 탱크는 신형 열광학 야간 투시경과 기존보다 사거리가 2배로 늘어난 2기의 유도미사일을 장착했으며, 미리 군 무기들을 국경에 세워놓고(park) 명령만 떨어지면 바로 시동 걸고 공격을 할 수 있도록 해 ‘경고 시간’을 줄였다. 또 흑해의 잠수함과 전함에서 발사하는 칼리브르 크루즈미사일과 육상에서 발사하는 이스칸데르-M 최신형 단거리 미사일은 우크라이나의 요격망을 피해 전역을 타격할 수 있다. 레이더 탐지가 힘든 이스칸데르 유도미사일 발사대 52대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됐고, 76개 전술대대 병력(1개 대대 평균 800명)이 우크라이나와의 전투 준비를 갖췄다.
이 탓에, 26만 명의 우크라이나군이 일부 서방 무기로 훈련되고 무장됐다고 해도, 러시아군의 총공세를 견뎌낼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없다.
러시아는 이 화력에, 사이버 해킹 능력과 외교전, 왜곡 정보를 퍼뜨리는 선전전을 결합해 전쟁을 한다. 지난달 14일 러시아의 해커들은 우크라이나의 70개 이상 정부 기관 웹사이트를 해킹하고 “두려워하며, 최악을 기대하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美의 정밀타격 능력은 없어도, 건물 전체를 날릴 수는 있다”
140개국의 전력(戰力)을 평가하는 글로벌파이어파워(Global Firepower)에 따르면, 러시아는 현재 극초음속미사일 경쟁에서 미국에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또 유럽주둔 미 지상군 사령관이었던 벤 호지스 예비역 준장은 NYT에 “통신을 재밍(jamming)하고 드론을 무력화하는 러시아의 전자전 장비들은 미군보다 뛰어나다”며 “미국이 지난 20년간 테러집단들의 휴대폰 네트워크 분쇄에 주력하는 동안에, 러시아는 강력한 재밍‧요격 능력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로켓발사대‧탱크‧자주포‧견인포 숫자에서도 전 세계 최대다. 글로벌파이어파워의 화력(火力)지수 순위에서 러시아는 미국에 이어 2위다. 이어 중국‧인도‧일본‧한국의 순이었다.
그러나 미‧중 국방예산에 비할 것은 아니다. 2020년 러시아의 국방예산은 620억 달러로, 미국7780억 달러. 중국 2523억 달러와는 큰 격차를 보였다. 한국은 같은 해 457억 달러였다.
또 러시아 군사력의 최대 약점은 군사력을 지원할 민간 경제가 약해, 첨단기술 제조능력이나 연구 개발에 대한 민간 투자가 없다는 점이다. 차세대 무기 개발에 필요한 첨단 반도체나 하이테크 부품,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 우크라나이나 군이 작년 11월 격추한 러시아 정찰 드론의 부품은 서유럽의 민간 레저용 드론 제조사에서 구입한 것이었다.
그러나 영국의 ‘로열유나이티드서비스인스튜티트’의 새무엘 크래니-에번스는 FT에 “미국이나 우방국처럼 한 건물의 오른쪽 창문을 파괴할 정밀 타격 기술은 없어도, 러시아 무기는 건물 전체를 날려 보낼 수 있을 만큼은 정밀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