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퀴리날레 대통령궁에서 자신의 재선을 확정한 대선 결과를 수락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EPA 연합뉴스

새 대통령 선거에 나섰던 이탈리아 정치권이 결국 적절한 인물을 찾지 못해 기존 대통령을 다시 뽑았다. 인물난 속에 1000여명의 선거인단이 과반수 지지를 받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투표하는 ‘묻지마 선거’를 하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라이(Rai) 뉴스와 안사(ANSA) 통신 등 이탈리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29일(현지시각) 오후 벌어진 대통령 선거 8차 투표에서 세르조 마타렐라(80) 현 대통령이 극적으로 재선됐다. 지난 23일 대선 투표가 개시된 지 6일 만이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1009명의 선거인단 중 과반(505표)을 초과한 759표를 얻어 당선됐다. 투표 참가자는 983명이었다.

이탈리아 대통령은 상원 의원 321명과 하원 의원 630명, 지역 대표 58명 등 선거인단이 모여 뽑는데, 후보자를 미리 정해 놓지 않고 대의원들이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아무나 적어내는 식으로 한다.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 방식과 유사하다. 이 때문에 한두 번 투표로 대통령이 정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4번 이상 투표를 하는 일이 흔하다.

2015년 1월 대통령에 당선된 마타렐라 대통령은 본래 올해로 임기를 마치고 은퇴를 하겠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선거 직전까지 마땅한 대통령 후보가 나오지 않아, 선출 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보통은 주요 정당이 후보 협상을 해 정한 인물을 놓고 이 사람에게 집중 투표를 하지만, 올해는 인물난이 심해 이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마리오 드라기 현 총리가 유력 후보로 계속 언론에 이름을 올렸지만, 현 총리가 대통령이 되면 새 총리를 뽑는 과정에서 정국이 불안해지고 결국 조기 총선을 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처음부터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파올로 마달레나 전 헌법재판소 부소장, 마르타 카르타비아 현 법무장관 등이 후보로 거론됐으나, 대의원들의 마음을 얻는데는 실패했다. 결국 현 대통령을 설득해 대통령 직을 계속 맡게 하는 상황이 됐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재선이 확정되자 “의회 결정을 존중하며, 큰 책임감을 느낀다”며 “주어진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드라기 총리도 “이번 대선 결과는 이탈리아를 위한 최고의 소식”이라며 “재선을 수락한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이탈리아 정치권에서는 뚜렷한 리더 정당이 없이 극우·중도·극좌 정당들이 사분오열되어 있는 이탈리아 정치 현실에서 최선의 결과가 나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이로써 전임 조르조 나폴리타노(96) 전 대통령에 이어 이탈리아 헌정 사상 두 번째 재선 대통령이 됐다. 그는 시칠리아 태생의 헌법학자이자 변호사로, 1983년 기독교민주당 소속으로 하원 선거에서 당선돼 2008년까지 7선을 했고. 부총리와 교육·국방장관 등을 역임했다.

2008년 정계 은퇴 후 자적하게 지내다 2011년 10월 헌법재판소 재판관으로 임명됐고 이어 2015년 대통령이 됐다. 지난해 1월 연립정부 내 갈등으로 주세페 콘테 내각이 붕괴하자, 뛰어난 국제 감각과 행정 능력을 지닌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전 총재를 총리로 지명, 정국 위기를 타개하는 정치적 능력도 보였다.

하지만 라이 뉴스 등은 “내년 3월 총선이 마무리 이후 마타렐라 대통령이 적절한 시점에 스스로 물러나는 길을 택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고 전했다. 전임 나폴리타노 전 대통령도 2013년 임기를 마치고 은퇴하려 했으나, 정치권의 후임자 추천 실패로 마지 못해 두 번째 임기를 수락했다. 그리고 2년 만인 2015년 고령과 건강 문제 등을 이유로 자진해 사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