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잃을 걸 알면서 계속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탈리아 베네치아 무라노 섬에서 유리세공업을 2대째 가업으로 이어가는 파비오 오네스토(61)씨는 지난 9월 가스 요금 고지서를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고지서에 적힌 숫자는 2만4450유로(약 3300만원). 몇 달 전에 비해 약 3배 이상 뛴 가격이었다. 지난달 중순, 그는 치솟은 가스 요금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아궁이 7개에서 불을 뺐다. 늘 훈훈했던 오네스토씨의 작업장에는 낯선 냉기가 흘렀다.
유럽을 강타한 에너지 대란의 여파로 이탈리아 베네치아 무라노 섬의 유리공예업이 고사 직전 위기에 처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6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관광객이 줄어 수입이 급감한 가운데, 최근 천연가스 가격 급등과 공급 불안정으로 원가가 올라 제작이 무기한 미뤄지는 등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가스값이 제품 단가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데, 갑작스러운 가격 인상으로 수지타산을 맞추지 못하게 된 것.
뛰어난 경관으로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베네치아 북동부의 무라노 섬은 유리 공예로 특히 유명하다. 13세기부터 유리 제조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이곳의 유리세공업자 다수는 여전히 전통적인 생산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WSJ에 따르면 메탄(천연가스의 주성분)을 사용해 아궁이에 불을 때는 이곳의 유리세공업자 150여명은 최근 천연가스 가격 급등과 공급 부족으로 제품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라노 섬의 대형 유리공예업자인 크리치아노 페로씨는 이번 사태로 생산량 90% 가량을 줄이기로 했다. 지난해 팬데믹 영향으로 수입이 절반 가량 줄어든 상황에서 가스 가격 급등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서다. 메탄 1큐빅미터 당 0.24유로(약 330원)를 고정가로 냈던 기존 계약은 지난 9월 공급 부족으로 파기됐다. 더 높은 가격에 새 공급처와 계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난 9월 4만2000유로(약 5700만원)였던 가스 요금이 지난달 17만2000유로(약 2억 3500만원)까지 치솟았다고 전했다.
무라노 섬의 유리세공업자들은 내년 봄까지 이 같은 에너지 대란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고객들에게 제작 무기한 연기 혹은 주문 취소를 알리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