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부가 도쿄올림픽에 참가하는 자국 선수들에게 언론 인터뷰 답변 지침을 내려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크림 반도 강제 합병 등 러시아와 직접 관계된 외교·안보 이슈를 비롯해 작년 미국의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시위 등 외국의 인권 문제까지 광범위한 주제에 걸쳐 맞춤형 답변을 만들어 준 것이다. 러시아 정부는 지침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따를지 여부는 선수 각자에게 달려있다”고 말했다.
현지 일간 베도모스티는 14일(현지 시각)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가 이번 올림픽에 출전하는 자국 선수 335명에게 이 같은 내용의 지침을 하달했다고 보도했다. 베도모스티에 따르면 ROC는 “해외 취재진의 도발적 질문에 선수들이 자기도 모르게 교묘히 넘어갈 수 있다”며 “부주의한 답변은 선수 자신에게 극도로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밝혔다.
베도모스티가 보도한 지침에 따르면 선수들은 러시아의 크림 합병·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분쟁 등 외교·안보 질문엔 “스포츠는 정치 바깥에 있어야 한다”고 답변해야 한다. BLM 시위·스포츠계 성폭력 등 인권 문제에 대해선 “올림픽이 정치적 플랫폼이 돼서는 안 된다” “내게 일어나진 않았지만 많은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안다” 등의 답안이 준비됐다. 답변이 생각나지 않거나 기타 민감한 질문을 받을 땐 ‘노코멘트’가 권장된다.
러시아의 ‘도핑 스캔들’과 관련된 질문을 받으면 교묘히 화제를 돌리라는 지시도 있다. 이 경우 “난 도핑에 연루된 선수가 아니다. 러시아에 제재를 부과한 이들이 답해야할 문제”라고 하면서 “난 러시아를 대표하고 싶다. (메달을 따면) 러시아 국가(國歌)를 듣고 싶다”라는 말을 덧붙여야 한다.
앞서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작년 12월 러시아의 국가 차원 도핑 샘플 조작 혐의를 인정해 도쿄올림픽을 비롯,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카타르월드컵 등에 국가 자격 참가를 금지시켰다. 러시아 선수들은 이번 올림픽에 개인 자격으로 출전하며, 러시아 국기·국호 등 국가 상징물을 사용할 수 없다. 이에 메달을 땄을 때 연주되는 음악도 국가가 아닌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사용하기로 했다.
러시아 선수들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도 개인 자격으로 참가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러시아가 도핑 테스트 결과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난 데 따른 것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지침 준수 여부는 선수들 개개인에 달렸다. 이들은 정치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