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7시 (현지 시각) 영국 런던 수퍼마켓 체인 세인즈버리즈의 야채 진열대가 텅텅 비어있다. /이해인 특파원

크리스마스를 나흘 앞둔 21일 오후 7시(현지 시각) 장을 보려고 영국 런던 시내 수퍼마켓 체인 세인즈버리즈(Sainsbury’s)에 들렀다. 양배추⋅브로콜리⋅치커리 등이 놓인 야채 코너가 텅 비어있었다. 영국에 온 지 넉 달 만에 처음 겪는 일이다. 직원에게 ‘내일 아침 일찍 오면 살 수 있느냐’고 묻자 그는 “내일도 없다. 우리 지점 재고가 다 떨어졌다. 언제 채워질지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텅빈 야채 코너 - 21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의 수퍼마켓인 웨이트로즈의 야채 코너가 대부분 텅 비어 있다. 영국에서는 변이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국경 폐쇄와 크리스마스 시즌이 겹치면서 사재기가 벌어지고 있다. 특히 국경 폐쇄로 농산물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사람들이 농산물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런던=이해인 특파원

세인즈버리즈에서 걸어서 2분 거리 대형 매장 웨이트로즈(Waitrose)를 또 찾았다. 이곳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1인당 2팩으로 구매를 제한한다’는 안내가 붙은 휴지 매대엔 재고가 거의 없었다. 생수가 놓인 매대엔 “당신이 필요한 만큼만 사십시오”라는 안내가 붙어있었다. 10m 넘게 줄이 이어진 야채 코너엔 대파⋅고구마 등 몇 종류만 제외하곤 구할 수 없었다. 직원에게 물으니 “내일 아침 재고가 채워지긴 하겠지만 금방 동날 테니 문 열자마자 오라”고 했다.

21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시내의 대형 수퍼마켓 테스코 앞에 장을 보려는 시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

영국에서 이런 사재기가 벌어지는 건 기존 코로나보다 전염력이 70% 강하다고 알려진 변이 코로나가 최근 발생한 탓이 크다. 이미 유럽, 중남미, 아시아 등 세계 40국 이상이 영국에 문을 걸어잠갔고, 이날 미국 뉴욕도 영국발 승객 입국 제한 방침을 밝혔다. 뉴욕은 지난 3월부터 영국 출발 승객 중 미국 시민권자만 입국을 허용했는데, 미국 시민권자라도 영국에서 체류했다면 음성 판정을 받아야 미국 입국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국경 폐쇄로 무역이 끊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사재기로 나타나는 것이다. 영국으로선 전례 없는 경험이다.

더선⋅데일리메일 등 현지 언론도 이날 영국 전역의 수퍼마켓에는 사재기를 하러 나온 시민들이 문 밖까지 줄을 길게 늘어선 장면이 연출됐다고 보도했다. 영국 현지 언론은 ‘영국의 역사적 위기’ ‘대혼돈’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상황을 전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코로나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가 영국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다는 점도 한몫했다. 영국에선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식당이 문을 닫기 시작해 당일과 다음 날까지 문을 안 여는 식당이 많다. 그래서 이맘때쯤 가족과 함께 연휴를 즐길 사나흘치 재료를 사러 시민들이 마트로 몰린다. 이날 브로콜리를 사려고 집을 나섰다가 마트 세 군데를 돌고서야 겨우 한 팩을 구했다는 네이선(31)씨는 “아무리 크리스마스여도 이런 적은 거의 없었다”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세인즈버리즈 대변인은 21일 가디언에 “변이 코로나로 인한 국경 폐쇄로 이 시기 대륙에서 들어오는 야채 공급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영국 토종 마트 체인 테스코도 이날 “내일까지 주요 제품의 재고에 문제가 없지만 (국경 폐쇄가 계속되면) 이번 주 후반 상추⋅콜리플라워⋅감귤과 같은 몇몇 신선품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정부는 사재기를 달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대부분 식료품과 의약품은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며 “국내 수퍼마켓은 다양한 식량 공급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평상시대로 쇼핑해달라”고 당부했다. 변이 코로나 발생으로 영국은 22일 하루 코로나 확진자수가 3만6804 명을 기록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역대 최고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