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츠비 역할의 배우 크레이그 해밀턴(오른쪽)씨와 데이지 역의 루신다 터너씨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위대한개츠비프로덕션

9일 오후 7시(현지 시각)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극장밀집지역). ‘개츠비 맨션’이라고 적힌 작은 간판이 붙은 낡은 건물로 들어서자 화려한 스팽글 원피스와 깃털이 달린 헤어밴드, 중절모와 멜빵 정장같은 1920년대 플러피룩으로 한껏 꾸민 관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었다. 로지 로젠탈 역할의 배우가 바 테이블에 올라 힘껏 목청을 높이면서 연극이 시작됐다. “이곳은 뉴욕이기 때문에 누가 무엇을 무엇을 만졌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마스크를 꼭 써주세요. 방을 탐험할 땐 세정제는 필수입니다. 파티를 시작합니다.”

코로나에 오페라의 유령, 시카고, 캣츠, 레미제라블 등을 탄생시킨 영국 웨스트엔드가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스콧 피츠제럴드의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영국 최장수 관객 참여형 연극 ‘위대한 개츠비’는 5년 공연 역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작년 국내에서도 초연된 바 있는 이 공연은 관객이 개츠비 파티 초대손님으로 설정돼 극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인기를 끌어왔다. 하지만 코로나는 연극의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이날 만난 이 공연의 브라이언 훅 감독은 “연출의 상당 부분을 수정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특히 평소 250명의 관객이 배우들과 함께 1920년대 찰스턴 댄스를 배우는게 이 공연의 클라이막스지만 이는 배우들의 댄스 정면로 변경해야 했다. 거리두기를 준수하기 위해 관객도 70여명으로 제한된다”면서도 “그럼에도 우리는 안전을 지켜하며 관객들이 최상의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계 배우 M.J리씨가 머틀 윌슨 역을 맡아 연기하고 있다. /위대한개츠비프로덕션


바 테이블에 앉아 공연을 즐기던 기자에게 머틀 윌슨 역의 한국계 배우 미셸 자넷리가 “공연 재밌느냐. 따로 얘기좀 하자”고 말을 붙이며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방 앞에 서서 “일단 손부터 좀 씻자”며 세정제를 뿌려주더니 “알고 있는 말 중 제일 더러운 말이 뭐냐”고 물었다. “이따 톰 뷰캐넌을 만나면 그 말을 꼭 전해달라”며 자리를 떴다.

이 공연의 메인 줄거리는 개츠비의 거실에서 진행되고 보조 줄거리는 무대 주변에 따린 9개의 방에서 펼쳐진다. 코로나 이전 관객은 자유롭게 방을 탐험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배우 안내에 따라 제한된 인원만 탐험이 가능하다. 관객이 즐길 수 있는 경험도 제한적이다. 예컨대 데이지는 개츠비와 만남을 위해 관객과 함께 드레스를 고르곤했지만 이제 관객들이 데이지와 함께 옷장을 뒤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날 공연을 보기 위해 런던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의 셰필드에서 왔다는 셜리(25)씨는 “배우들 안내에 따라 다양한 방을 탐험할 수 있었지만, 생각보다 제한이 많아 아쉬웠다”며 “코로나가 풀리면 다시 와서 온전한 공연을 즐기고 싶다”고 말했다.

밤 10시쯤 공연이 끝나자 닉 캐러웨이 역할을 맡은 제임스 로렌스가 바에 마이크를 들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끔찍한 상황이 아니면 배우들이 극에서 나와 관객들과 함께 술을 즐기는 시간이지만 이제는 불법이다. 우리는 문을 닫아야 한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세요. 아름다운 저녁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