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최근 사제(司祭)들을 위한 이색 군복이 개발됐으나 우스꽝스러운 형태 때문에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다. 일반 사제복과 다를 바 없는 치렁치렁한 복장이 군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방부는 지난달 24일 수도 모스크바 외곽 쿠빈카에서 러시아 국제 군사·기술 포럼을 개최했다. 헬기·전차·미사일 등 신형 군사 장비를 소개하는 이 포럼에서 눈길을 끈 건 군종(軍宗)장교용 신형 군복이었다. 이 군복은 위장 무늬가 들어간 녹색 원단이 발등까지 덮는 모양이다. 옷깃엔 휘장 대신 십자가 무늬가 새겨졌다. 러시아 관영 방송 OTR은 “야외 기동 훈련에 참가할 사제들을 위해 안성맞춤”이라고 했다. 야전 예배 때 사용할 녹색 양초와 십자가도 공개됐다. 러시아는 왜 사제들을 위한 특수 군복까지 만들까.
러시아는 전 국민의 70%가량이 러시아정교를 믿는다. 그러나 소련 공산주의 정권 치하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으로 취급돼 군종장교를 운용하지 않았다. ‘군의 종교화’를 적극 밀어붙인 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다. 그는 잠시 총리로 물러나 있던 2009년 군종장교 제도를 러시아군에 도입했다.
푸틴은 군 내 종교 활동을 적극 권장하고 지원한다. 러시아 현지 매체 러시아비욘드에 따르면 러시아군에 배치된 군종장교가 현재 1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각 부대에 배치돼 예배 등 군 내 종교 활동을 돕는다. 소형 화기부터 잠수함, 탄도미사일에까지 성수(聖水)를 뿌려 무운을 빌기도 한다. 지난 5월엔 약 8040만달러(955억원)를 들여 모스크바 외곽에 6000명 수용이 가능한 높이 95m의 거대 군용 러시아정교 성당을 짓기도 했다. 지난달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푸틴이 종교를 장병들의 정신 무장과 애국심 고취에 활용하기 위해 군에서 종교의 영향력을 점점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종교가 군과 정치에 이용된다는 반감이 사제들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 올해 초 러시아정교회는 대량 학살 무기에 대해선 군종장교들의 축성(祝聖)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제용 군복에 대해서도 여론은 싸늘한 편이다. 현지 소셜미디어엔 “전투 때 옷이 발에 걸려 넘어지겠다” 등의 조롱 섞인 비난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