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경제 개혁에 초점을 뒀던 장쩌민, 후진타오 전 주석과 달리 강군 건설을 재임 중 가장 큰 역점사업으로 보고 있으며, 이것이 지난 수년간 계속된 대규모 군부 숙청의 주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원하는 만큼 군 개혁이 따라오지 못하자 인내심을 잃으면서 숙청이 잇따른다는 거죠.
미 중앙정보국(CIA) 고위 분석관 출신으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중국 담당 국장을 지낸 조나단 친과 35년간 CIA 분석관으로 일한 존 컬버 전 국가정보국(DNI) 동아시아 담당관은 이 같은 분석을 담은 ‘시진핑은 왜 아직 그가 원하는 군대를 갖지 못하나’는 제목의 기고문을 8월18일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에 게재했습니다. 두 분석관은 미국 정보기관 내에서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들입니다.
2023년 시진핑 집권 3기가 시작된 이후 중국 내에서는 최소 21명의 고위 장성들이 숙청을 당했습니다. 최근에는 시 주석 측근으로 꼽히는 허웨이둥 군사위 부주석과 먀오화 상장(정치공작부 주임)까지 낙마하자 시 주석 실각설이 나오기도 했죠. 이에 대해 두 분석관은 “마치 마피아 보스처럼 동료도 쓰고 버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면서 “군에 대한 장악력은 변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군 장악력 여전...실각설 근거 없어”
시진핑 주석은 2013년 주석 취임 이후 강도 높은 군 개혁을 해왔습니다. 가장 먼저 쉬차이허우, 궈보슝 전 군사위 부주석 등 군부 내 장쩌민 전 주석 세력을 솎아냈죠.
당시 중국군은 고립된 섬과 같아서 당 차원의 문민 통제조차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각 군이 군종 별로, 지역별로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한 장벽을 치고 있어서 인사 교류나 연합작전이 쉽지 않았고, 부패도 만연했다고 하죠.
시 주석은 2016년 중국 전역을 담당하는 5개 전구(戰區) 체제를 구축하고 각 전구 별로 육·해·공군을 통합해 운영하는 군 편제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육군을 병력을 대폭 줄여 힘을 빼고, 전략 미사일을 담당하는 로켓군 등을 신설했어요. 최고 군사기구인 중앙군사위에도 미국식 합참 체제를 도입했습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공산당의 지휘를 받는 당의 군대이지만, 역대 최고지도자들은 늘 군 장악에 애를 먹었어요. 후진타오 전 주석은 재임기 내내 장쩌민 전 주석 계열 장성들에 막혀 군을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반면, 시 주석은 전광석화처럼 군 개혁을 단행했고 그 과정에서 군부 내 저항은 거의 없었어요.
◇장여우샤는 반기 들 이유가 없다
시 주석은 첫 공직을 군에서 시작한 군 출신이라는 점에서 전임인 장쩌민, 후진타오 주석과 달랐습니다. 대학 졸업 직후인 1979년 중앙군사위 판공실 비서(중위급)로 들어가 군사위 비서장 겸 국방부장이었던 겅뱌오의 비서로 3년간 일했죠. 군을 그만큼 잘 압니다. 같은 태자당(중국 혁명 원로나 고위 관료의 자제, 친인척) 출신인 장여우샤 군사위 부주석, 류위안 상장 등의 도움도 컸다고 해요.
최근 실각설을 보면 장여우샤 부주석이 시 주석에 반기를 들 것이라는 말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두 분석관은 “시 주석과 장 부주석은 아버지가 친구 사이”면서 “시 주석은 이미 은퇴 연령을 훌쩍 넘긴 장 부주석을 계속 쓸 정도로 신뢰관계가 두텁다”고 했어요. 장 부주석은 중국군 부패의 온상으로 꼽히는 장비발전부장을 지냈지만 최근 진행된 군 부패 조사도 비켜갔습니다.
이런 그가 시 주석에 대항할 이유가 없다는 게 두 사람의 분석이었어요. 시 주석의 아버지인 시중쉰 전 부총리와 장 부주석 부친인 장쫑쉰 전 중국군 부총참모장은 국공 내전 당시 산시(陝西)성에서 같은 부대에서 함께 싸운 전우입니다.
◇“발탁 인사 부패 연루에 인내심 잃어”
시 주석은 집권 직후 중국군에 ‘싸워서 이기는 군대(能打勝仗)’라는 구호를 제시했죠. 역으로 보면 제대로 싸울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하고 무능한 군대라는 뜻입니다.
시 주석은 군 편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했고, 매년 국방비를 늘려 장비 현대화에 박차를 가했죠. 유능한 젊은 장성을 파격적으로 발탁해 군 요직에 앉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발탁한 인사들이 시 주석의 뒷배를 믿고 고질적인 부패 구조에 물들었다가 대거 숙청의 대상이 됐다는 게 두 분석관의 결론이었어요.
두 분석관은 “장여우샤 부주석에 비하면 허웨이둥, 먀오화 등 숙청당한 고위 장성들은 이너 서클의 외곽 정도에 머물렀던 인사들”이라면서 “시 주석과의 관계를 부패에 대한 면죄부로 잘못 계산했다”고 했습니다.
◇‘아랍의 봄’이 준 충격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튀니지 등에서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을 때 군부가 시위 진압 명령을 거부한 것도 중국에 큰 충격을 줬다고 해요. 중국에서 비슷한 시위가 벌어진다면 군이 나서서 공산당을 지킬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는 겁니다. 실제로 1989년 천안문 사태 당시에도 일부 장군들이 유혈 진압을 거부했죠.
두 분석관은 시 주석이 안으로는 시위 사태 때 공산당 권력을 지키면서 밖으로는 대만 침공 등이 벌어졌을 때 미국과 정면으로 싸울 수 있는 강력한 군대를 원하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시진핑의 군 개혁이 2027년 네 번째 임기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했어요. 두 분석관은 “시 주석의 중국군 재편은 대만 통일이라는 단기 목표 이상의 상징적 의미가 있다”면서 “인민해방군 창설 100주년이 되는 2027년이 되면 시 주석과 중국군은 인민해방군이 그동안 이룬 성취를 대대적으로 선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2027년은 시 주석이 물러나지 않는다면 네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해가 되죠. 시 주석이 군 현대화를 업적으로 내세워 네 번째 임기에 도전할 수 있을 것으로 두 분석관은 내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