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 로고./로이터 연합뉴스

“위안화 출해(出海·국제화)의 상징적 사건”

지난 27일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가 중국 정유회사인 룽성(榮盛) 석유화학의 지분 10%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하자 중국의 한 경제 매체는 이렇게 평가했다. 아람코가 역대 최대 규모 해외 지분 인수를 위안화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지불할 인수 금액은 246억위안(약 4조7000억원). 중국의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아람코는 자체적으로 보유한 위안화로 인수 대금을 지불할 예정”이라면서 “중동이 거액의 위안화 투자와 결제를 늘릴수록 ‘페트로 위안(석유 위안)’은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가 되어간다”고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아람코가 위안화 거래를 밝힌 다음 날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 겸 총리와 전화에서 “중국과 사우디의 관계는 역사상 가장 좋다”며 감사를 표했다.

중국이 달러 패권에 맞서기 위해 추진해온 ‘위안화 국제화’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자국에 우호적인 국가들과 위안화 사용을 합의하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 국제 정세를 적극 이용해 위안화의 위상을 빠르게 높인 것이다. 위안화의 국제 결제 통화 비율은 3% 수준으로 60%가 넘는 달러에 비해 미미하지만, 모건스탠리는 위안화가 10년 내 달러·유로와 함께 세계 3대 결제 통화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은 특히 산유국인 중동 국가들과 손을 잡으며 위안화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 시진핑은 지난해 12월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중국·걸프협력회의(GCC) 정상회의에서 “원유와 천연가스의 위안화 결제를 추진[開展]해야 한다”고 했다. 중국은 줄곧 원유·가스 수입 대금을 위안화로 지불하는 방안을 추진할 의욕을 보였지만, 시진핑이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달 14일에는 중국이 사우디 국영은행에 첫 위안화 대출을 내줬다. 28일에는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가 아랍에미리트(UAE)산(産) 액화천연가스(LNG) 6만5000톤을 프랑스 토탈에너지를 통해 수입하며 위안화로 결제했다. LNG는 통상 달러로 거래하는데 중국이 처음으로 LNG를 위안화로 결제한 사례가 나온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에서 위안화가 달러의 위상을 넘어서게 했다. 위안화는 지난 2월 러시아에서 달러를 제치고 처음으로 가장 많이 사용된 외화에 등극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만 해도 러시아의 수출 대금에서 위안화의 비율은 1% 미만이었지만 이제는 16%에 달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1일 중·러 정상회담 직후 “러시아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와 결제에서도 위안화 사용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과 브라질 또한 달러가 아닌 위안화와 헤알화로 무역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브라질 정부가 29일 발표했다. 중국은 브라질의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작년 양국 교역액은 1505억달러에 달한다. AFP통신은 “미국 중심 경제 질서에 도전하는 중국과, 중남미 최대 경제국인 브라질이 손을 잡고 달러를 우회하는 대규모 무역·금융 거래를 추진하게 됐다”고 했다.

외국 은행 계좌 개설 서비스 업체인 헬프유의 나탈리아 레벤코 창업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1년 전만 해도 위안화는 중국과 사업하는 이들을 위한 통화였지만, 지금은 중국과 관련 없는 해외 거래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된다”고 했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심화되고, 미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달러의 힘이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추진은 미국에 대한 오래된 불안감에서 기인한다. 미국이 중국의 미국 내 금융자산을 동결하는 금융 제재를 가하면 한순간에 중국의 생존이 위협받는다. 국제 무역 결제가 대부분 달러로 이뤄지기 때문에 미국이 중국의 달러 결제를 막으면 에너지 확보도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중국은 2007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부터 달러 중심의 국제통화 체계에 의문을 제기했고, 2009년 위안화 국제화를 국가 정책으로 삼았다.

그러나 위안화가 국제 결제 통화로서 취약해 달러를 대체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위안화는 국제 무역에 사용되는 통화로서 달러, 유로, 파운드에 비해 신뢰도가 낮고, 국가가 환율에 개입해 투명성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 중국의 금융 전문가들도 위안화 국제화는 장기 프로젝트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