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동남아가 미·중 양국의 외교 격전장(激戰場)이 될 전망이다. 반도체 수출 통제, 대만 문제 등을 놓고 미·중 갈등이 수교 이후 최악인 가운데 미·중 정상이 이달 동남아에서 열리는 대형 외교 행사에 잇따라 참석해 외교전에 나서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미·중 정상 간 대면 만남도 이뤄질 것으로 보여 향후 양국 관계 진로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12~16일 동남아 지역 순방에 나선다. 우선 오는 12~13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예정된 미국·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참석한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은 캄보디아 방문 기간 동남아와 아세안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헌신을 재확인하고 역내 안보와 번영을 위한 미국과 아세안의 협력 중요성도 강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어 다음 순방지인 인도네시아로 이동해 13~16일 발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게 된다. 백악관은 이 기간 바이든 대통령이 G20 파트너들과 기후변화 및 세계 경제 회복을 위한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중국공산당 총서기 3연임을 확정한 직후 곧바로 본격적인 동남아 행보에 돌입했다. 시 주석은 지난달 31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에게 ‘우호 훈장’을 수여하고 회담을 가졌다.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 이후 시 주석이 처음 만난 외국 정상이다. 시 주석은 “중국과 베트남 국가·당 관계 발전을 우리가 얼마나 중시하는지 충분히 보여준다”고 했다.

시 주석은 또 첫 해외 순방으로 동남아를 택했다. 시 주석은 인도네시아 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같은 회의에 참석하는 바이든 미 대통령과 대면할 것으로 보인다. 미·중 외교장관이 지난 31일 70분간 전화 통화를 갖고 양국 관계를 논의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이어 18~19일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시 주석이 국가주석에 오른 후 태국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에서는 바이든 대통령 대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참석한다.

미·중 양국이 동남아 외교전에 나선 것은 외교와 경제 등 글로벌 패권 경쟁에서 동남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임기 첫 아시아 순방에 앞서 아세안 정부 대표들을 백악관에 초청해 ‘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열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임 대통령 시절 아세안을 무시했다는 비판 속에 취한 조치이지만 동시에 아세안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도 깔렸다. 실제 바이든 대통령은 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직후 일본으로 날아가 중국 견제 성격의 경제 구상인 인도 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를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동남아 순방에서도 아세안 국가들을 규합해 대중(對中) 견제 전선을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에도 아세안은 남중국해 영유권 등 핵심 이익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중요성이 큰 지역이다. 강력한 코로나 방역 정책으로 인해 중국 경제가 지난 1~3분기 전년 대비 3% 성장에 그치고 미국·유럽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중국 내에서는 아세안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아세안과 한·중·일 경제를 분석하는 국제기구인 역내 거시경제조사기구(AMRO)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올해 아세안 경제성장률을 석 달 전 5.1%에서 5.3%로 상향 조정했다. 이는 한국(2.5%)과 일본(1.6%)은 물론 중국(3.8%)보다도 높은 수치다. 중국에 진출한 대기업 관계자는 “최근 중국 당국자들이 면담에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중요성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다”며 “중국 시장의 어려움을 동남아 시장으로 극복하겠다는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RCEP는 아세안 10국과 중국이 주도하고 한·일·호주·뉴질랜드가 참여하는 자유무역협정이다. 중국은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일환으로 인도네시아 고속철도, 라오스·태국 철도 등에 대규모 투자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