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1일 중국 하이난성 보아오에서 열린 보아오 포럼 개막식에서 화상연설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로이터 뉴스1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자본의 발전을 위해 더 큰 공간을 풀어줘야 한다”며 자본 시장 발전을 강조하고 나섰다. 미국의 금리 추가 인상 조짐에 외국 자본이 중국을 이탈하자 최고 지도자가 직접 시장 달래기에 나선 것이다.

1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따르면 시 주석은 지난달 30일 열린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집단 학습에서 “자본을 규범화하고 발전을 이끄는 것은 경제적·정치적으로 중대한 문제”라고 했다. 또 “지난 개혁 개방 40년간 자본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번영과 발전에 공헌해왔다”며 “(자본의) 적극적 역할은 반드시 긍정해야 한다”고 했다.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 시 주석 주재 회의에서 “자본의 건전한 발전을 추진한다”(작년 8월 중앙재경위 회의)는 언급이 나온 적은 있었으나 시 주석이 자본 시장 발전 문제를 자세히 언급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시 주석은 지난해까지 코로나 조기 방역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공동부유(共同富裕)를 강조했다. 공동부유는 ‘더불어 잘살자’는 뜻으로 고소득층에 대한 과세, 기업의 기부 등을 통해 빈부격차를 완화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시 주석은 또 2020년 하반기부터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산하 핀테크 기업인 앤트그룹의 상하이, 홍콩 상장을 중단시키고 앤트그룹 사업을 구조 조정하는 등 막대한 자본을 가진 자국 IT 기업에 대한 통제를 주도했다. 미·중 갈등 속에서 데이터 보안을 이유로 중국 기업의 해외 증시 상장에 제동을 걸었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중국 기업이 미국 증시 상장을 포기하고 중국 본토나 홍콩 증시로 유턴하기도 했다. 자본의 경우 확장, 발전보다는 규제, 관리가 강조됐고, 중국 당국의 ‘규제 리스크’ 속에서 해외 투자자들이 손해를 보기도 했다.

시 주석은 이날 자본의 무질서한 팽창을 경계하며 당(黨)과 국가 차원의 규범·관리를 강조하면서도 “대외 개방 수준을 높여 국제 자본의 중국 투자를 이끌어내고, 우리(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지·격려해야 한다”고도 했다.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 주석의 발언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 최근 들어 중국 경제를 둘러싼 조건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 에너지, 식량 가격 불안이 계속되고 지난달 발표된 1분기 경제성장률은 4.8%로 중국 정부의 올해 성장률 목표치(5.5% 내외)에 못 미쳤다. 게다가 3월 말 시작된 상하이 코로나 봉쇄와 미국의 금리 인상의 영향으로 외국 투자자들이 철수하면서 중국 증시가 급락하고 위안화 가치도 떨어지고 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3월 한 달 중국 채권시장에서 112억달러(약 14조원), 주식시장에서 63억달러(약 8조원)가 유출됐다. 조너선 포툰 IIF 이코노미스트는 성명을 통해 “외국 투자자들이 (중국에서의) 익스포저(위험 노출액)에 대해 다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주중 유럽상공회의소 등은 코로나 장기 봉쇄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3월 15일 상하이와 홍콩 증시가 개장과 함께 급락하자 ‘시진핑의 경제 책사’라는 류허 부총리가 국무원 금융안정발전위원회 특별 회의를 열고 “중국 기업의 해외 상장을 지지하고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언급해 증시 하락을 멈춰 세웠다. 중국 상무부는 한국을 비롯한 중국 내 외국 기업 대표를 불러 애로 사항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상하이 봉쇄가 장기화하고 수도 베이징에서도 코로나 봉쇄 우려가 나오면서 4월 25일 상하이 증시는 또다시 5% 이상 급락했다. 중국 위안화 가치가 급락하자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같은 날 밤 외화 예금 지급준비율을 5월 15일부터 9%에서 8%로 1%포인트 낮춘다고 발표했다. 시장에 달러를 추가로 공급하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중국 당국은 대기업에 자사주 매입을 권고하고 증권 거래세를 인하하는 등 증권 시장 활성화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다만 이날 시 주석은 자본 시장 개혁, 발전을 촉구하면서도 중국 공산당과 사회주의 체제에 의한 관리를 강조했다. 또 자본 확장으로 인한 부작용, 독과점, 해외 투기 자본에 대한 지속적 단속 의지도 밝혔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시 주석의 발언도 의미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중국이 실제 어떤 정책을 내놓는가에 달렸다”며 유보적 입장을 내놓았다. 미·중 갈등이 계속될 경우 외국 기업의 중국 투자 확대도 낙관할 수 없다.

중국 당국은 올가을 시 주석의 3연임을 확정하는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상반기 추가 경기 부양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중국만 돈을 풀게 되면 외자 유출, 물가 상승, 경기 하강의 3중 파고가 함께 들이닥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국 경제학자 런저핑은 지난달 30일 중국 매체 차이신에 기고한 글에서 현재 중국 경제가 “내부적으로 코로나 재발, 부동산 침체, 중소기업의 생산난, 취업난, 외부적으로는 인플레이션, 미국의 금리 인상, 지정학적 충돌의 압력에 놓여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2022년 중국 경제는 과학적인 방역과 조업 재개, 부동산 연착륙, 신(新) 인프라 건설, 시장 주체의 자신감 회복 등 4가지의 달성 여부에 달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