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지난 4일 개막식을 갖고 열전에 돌입했습니다. 미국, 영국 등 서방 10여 개국이 위구르족 인권 탄압 등을 이유로 정부 사절단을 보내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했죠.
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에 우호적이거나 신세를 진 국가들의 정상을 대거 초청해 체면을 차렸습니다. 황제를 상징하는 용 형상의 수로(水路)가 그려진 대형 식탁을 사이에 두고 외국 정상들을 환영하는 만찬을 가져 당나라 시절 만방래조(萬邦來朝·주변국 조공 행렬)를 구현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죠.
명분뿐만 아니라 실리도 챙겼어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미국의 압박에 대응해 중·러가 국제 문제에서 공동 보조를 취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장기 집권 걸린 정치 이벤트
동계 올림픽은 지구촌의 겨울 스포츠 축전이지만, 시 주석 입장에서는 장기집권 여부가 걸린 대형 정치 이벤트입니다.
올해 말에는 시 주석의 3연임을 결정하는 20차 공산당 당 대회가 있죠.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도 동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의 위상을 과시함으로써 연임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겁니다. 편파 판정이 속출하는 것도 중국 팀의 종합 성적을 끌어올려 이 이벤트의 대미를 장식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최 비용, 평창 때의 3분의 1이라고?
이벤트는 어느 정도 성공한 듯 보이지만 중국은 값비싼 비용을 치렀습니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검소하고 안전하며 멋진 올림픽’을 치를 것이라고 해왔죠. 그러면서 전체 소요 비용이 39억달러로 2008년 베이징 하계 올림픽 당시 68억달러보다 크게 줄었다고 했습니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 소요된 비용이 129억달러인데, 그 3분의 1밖에 안 들었다는 주장이죠.
이 발표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고속철도와 고속도로, 지하철 등 인프라 구축 비용과 일부 경기장 건설비 등이 대거 빠졌거든요. 미국 경제 전문지인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중국 측 공개 자료를 토대로 추산한 결과 최소 385억달러(한화 약 46조원)가 들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중국 측 공식 발표 액수의 10배에 이른다는 거죠.
베이징 동계 올림픽은 베이징 도심 올림픽 선수촌, 서북쪽 외곽의 옌칭(延慶)구, 허베이성 장자커우(張家口) 등 3곳에서 치릅니다. 베이징 도심에서 장자커우까지는 160㎞ 정도가 되죠. 차로는 3시간 거리인데, 최고 시속 350㎞의 고속철도를 건설해 소요시간을 50분으로 줄였습니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이 무려 92억 달러입니다.
장자커우에는 닝위안이라는 국내선 공항이 있는데, 이 공항을 정비하는데도 2억 달러가 소요됐어요. 인구 400만명 규모인 장자커우는 만리장성 구간의 가난한 지방도시입니다. 그러다 보니 고속도로 등 교통망 정비에도 거의 150억 달러가 들어갔어요. 베이징 올림픽 선수촌 내에 새로 들어선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 등의 건설 비용도 합쳐서 10억 달러 정도 가까이 됩니다.
◇‘친환경 올림픽’의 허구
중국이 이번 올림픽에서 내세운 또 하나의 캐치프레이즈는 친환경 올림픽이죠. 그런데 뉴욕타임스 분석에 따르면 그다지 환경 친화적인 것 같지도 않습니다.
베이징은 연평균 강수량이 664㎜ 정도로 적어서 동계 올림픽에 적합한 곳이 아니죠. 베이징 주변 산지 중에는 연간 강수량이 거의 0에 가까운 곳도 있습니다. 베이징 북쪽으로 차로 1시간 정도만 나가면 초원·사막지대가 나와요.
이런 곳에서 동계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중국은 물이 풍부한 남쪽에서 물을 끌어와 인공 눈을 만드는 방법을 썼습니다. 경기장 건설에 적합한 지형을 갖춘 장자커우와 옌칭의 산악 지역을 택해 수목을 대거 제거하고 여기다 인공 눈을 뿌려 경기장을 조성한 겁니다. 이러고도 친환경이라는 건 억지겠죠.
이런 불리한 입지에도 굳이 베이징에서 올림픽을 개최한 건 베이징을 하계 올림픽과 동계 올림픽을 모두 치른 사상 첫 도시로 만들겠다는 의도일 겁니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조성한 스키장을 올림픽 이후에도 계속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