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통신 기업 화웨이(華爲)가 중국 정부의 정치 사찰 및 인권 탄압 과정에 긴밀히 관여해왔다는 정황이 나왔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4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이는 중국 정부가 신장 지역의 소수민족을 감시하고 강제 노동에 동원하는 일에 자국 통신 기업들을 동원하고 있다는 미 행정부의 입장과 일치한다. 미 의회 매체 더힐은 “WP 보도는 중국의 인권 침해 행위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계속해서 고조되는 상황에서 나왔다”며 “화웨이가 외부에 알려진 것보다 중국 정부의 감시 및 사찰에 더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WP는 이날 화웨이의 내부 파워포인트 자료 100건 이상을 분석한 결과, 화웨이가 안면 인식, 위치 추적, 음성 분석 등의 기술을 동원해 중국 정부의 정치 사찰을 도운 것으로 추정되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WP는 이 중 일부를 공개했다. 화웨이는 이 마케팅 자료들을 지난해 말까지 웹사이트에 올려놨다가 현재는 삭제한 상태다. 이 자료들은 2014년부터 2020년에 걸쳐 만들어졌으며, 각 자료 하단엔 화웨이 상표가 표시됐다.
이날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화웨이는 ‘국가 안보와 방어’라는 제목의 파워포인트 문서에서 특정 음성 속 목소리의 정체가 누구인지 밝혀내는 과정을 설명했다. WP는 “중국에서 ‘국가 안보’라는 용어는 정치적 반대자, 종교 및 집회, 홍콩과 대만 정책, 소수민족 등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표현”이라고 했다. 중국 정부가 국가 안보 명목으로 내부 정적 등을 실시간 감시하는 데 활용했다는 의미다.
화웨이는 인터넷에서 다운받거나 인위적으로 획득한 음성 데이터를 인식하고 분석해 특정인을 지목할 수 있다고 했다. 화웨이는 이 기술을 구현하려 중국의 AI(인공지능) 업체인 아이플라이테크와 함께 ‘음성 지문 운영 플랫폼’도 개발했다고 밝혔다. 아이플라이테크는 지난 2019년 10월 미 상무부가 위구르 인권 탄압을 이유로 제재 리스트에 등록한 기관 28곳 중 하나다.
또 다른 파워포인트 자료에서는 “공공에 위협이 되거나 정치적으로 요주의 인물인 경우 차량 번호판, 안면 인식·추적 기술 및 경찰 정보 등을 통합해 스마트 감시 체계를 만들었다”며 “(이 기술은) ‘당신’을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도 했다. 외신들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파워포인트의 청중이 감시 작업을 진행하는 정부 기관 소속 관료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화웨이는 관련 의혹을 부인하면서 “특정 그룹이나 사람을 목표로 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거나 판매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른바 ‘스마트 감옥’에 대한 설명을 상세하게 해놓은 자료도 공개됐다. 스마트 감옥은 감옥이나 구류 시설 등에 가둔 사람들에게 교화 및 재교육, 노동 등을 수행시키려 만든 특별 시스템이다. WP는 “위구르 지역에서 소수민족을 기소 없이 구류해 고문 및 강제 노동을 시키고 있는데 화웨이가 이런 인권 탄압의 기술적 토대를 설계하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화웨이 등 중국 업체들의 통신 장비가 미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중국 업체 퇴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작년 12월 미국 통신사들에 화웨이 및 ZTE(中興) 장비를 철거하라고 명령했고, 바이든 대통령 당선 후에도 이 조치는 유지됐다. 이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소식통을 인용해 “미 재무부가 중국의 최대 드론 회사 제조 업체인 DJI등 회사 8곳을 위구르족 감시 가담 등을 이유로 (미국 내) 투자 블랙리스트에 올릴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화웨이는 이미 2019년 블랙리스트에 오른 상태다.
‘기술 패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중 간 ‘신냉전’은 미국의 핵심 동맹국들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날 CNN 등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UAE)는 최근 미국의 최신형 F-35 전투기 50대와 무장 드론 등에 대한 구매 협상을 전격적으로 유보했다. 230억달러(약 27조2940억원) 규모의 이번 구매 협상은 전임 트럼프 행정부 때인 작년 11월 결정됐다. 외신들은 “(구매 유보 결정은) 미국이 UAE 측에 ‘중국 화웨이 통신망 사용을 중단하라’고 요구한 데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 정부가 화웨이 통신망을 통해 F-35 등 미국의 무기 정보를 빼낼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미국이 UAE에 ‘화웨이 퇴출’을 압박했다”며 “(부담을 느낀) UAE가 한발 뺀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