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0일 미국은 ‘아버지의 날’이었죠. 조 바이든 대통령은 트위터로 모든 아버지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장손자와 골프를 쳤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날’이 따로 없는 중국도 미국을 따라 이날을 기념하곤 하죠. 중국 국영 CCTV 홈페이지는 이날 ‘시진핑과 아버지: 2대에 걸친 공산당원의 이어달리기’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1958년 국무원 비서장 시절의 시중쉰. 왼쪽이 시진핑 주석이고 가운데는 시 주석의 동생인 시위안핑이다. /중국 CCTV

◇마오에 숙청당한 옌안의 실력자

시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1913~2002)은 중국 혁명 원로로 부총리와 광둥성 당서기 등을 지냈죠. 서민들과 서슴없이 어울리는 소탈한 풍모로 존경을 받는 분입니다. CCTV의 기사는 시 주석도 이런 아버지의 품격을 이어받아 대를 이어 국민에게 봉사하고 있다고 선전했지요.

그런데, 중국 지식계층에서는 얼토당토않는 기사라는 반응이 적잖았습니다. 시 주석은 개혁파였던 아버지보다 그 반대였던 마오쩌둥 전 주석의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비교가 가능하냐는 거죠.

문화대혁명 당시인 1967년9월 산시성 셴양에서 열린 한 투쟁집회에 끌려나온 시중쉰. 목에 '반당분자 시중쉰'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다. /중국 인터넷

시중쉰은 서북 산시(陝西)성의 빈농 가정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게릴라 활동으로 잔뼈가 굵은 지방의 실력자였죠. 산시성과 간쑤(甘肅)성, 닝샤(寧夏)에 걸쳐 있었던 산간변구(陝甘邊區) 소비에트정부의 주석을 지냈습니다. 국민당 군의 포위 공격에 쫓긴 마오쩌둥이 대장정 끝에 홍군을 이끌고 달려간 옌안(延安)이 바로 시중쉰의 근거지였죠.

홍군 주력을 보호한 공로로 시중쉰은 건국 후 당 선전부장, 국무원 부총리 등으로 승승장구했습니다. 하지만 마오쩌둥이 지방 실력자들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모함을 받아 1965년 지방의 광산기계 제조공장 부공장장으로 쫓겨갔죠. 문화대혁명 때도 ‘반당분자’로 몰려 고초를 겪었습니다.

◇덩샤오핑에 개혁개방 건의

덩샤오핑이 집권한 1978년에야 복권이 돼 중국의 남쪽 대문이라고 하는 광둥성 서기를 맡았죠. 홍콩과 인접한 광둥성은 당시 홍콩 밀항 문제로 큰 골치를 앓았죠. 한해 2만명에 가까운 농민들이 홍콩으로 넘어갔습니다. 당내에서는 이들을 ‘배신자’로 간주하고, 군대를 증파해 밀항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적잖았다고 해요.

하지만 시중쉰은 현장에서 농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난 뒤 “홍콩으로 도망가는 농민들을 적으로 간주하지 마라”고 지시합니다. “먹고 살기가 좋아지면 갔던 사람들도 다시 돌아올 것”이라며 농민들이 요구한 각종 경제 개혁 조치를 실행하죠. 채소나 생선 등을 키워 홍콩에 내다팔수 있게 한 겁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밀항 인구가 줄었다고 해요.

1978년8월 광둥성의 한 농촌 지역을 시찰 중인 시중쉰 당시 광둥성 당서기(붉은 원 안)가 현지 농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푸른 원 안이 아버지를 따라 나선 시진핑 주석이다. /중국 CCTV

1979년에는 덩샤오핑에게 한국, 대만 모델을 따라 홍콩 인접 지역을 수출·가공무역 특구로 키우자고 건의합니다. 덩샤오핑은 “당 중앙이 돈을 줄 수는 없지만, 정책은 줄 수 있다. 죽을 각오로 한 줄기 혈로를 뚫어라”고 격려하죠.

이것이 개혁·개방 1번지라는 선전 특구 지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정치개혁 문제는 후야오방 지지

정치적으로도 개혁파의 지지자였죠. 1987년 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후야오방 당시 총서기가 당 원로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을 때 “원로들이 문화대혁명 방식으로 총서기 사임을 압박하는 것은 당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유일하게 그를 지지했습니다.

1980년 봄 광둥성 광저우공항에서 만난 후야오방 당시 중국 공산당 총서기(왼쪽)와 시중쉰 광둥성 당서기. /鈞天

시중쉰은 다양한 현장 목소리를 듣고 이를 정책에 반영할 줄 아는 합리적이고 포용력 있는 지도자로 중국 국민들의 기억에 남아있죠. 반대 목소리를 일절 용납하지 않으면서 스탈린식 1인 지배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시진핑 주석을 어떻게 아버지 시중쉰과 비교할 수 있느냐는 게 중국 내 개혁파 지식인들의 생각입니다.

오이 덩굴에서 가지가 열린 것처럼 전혀 다른 길을 걷는 부자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