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비판 발언을 했다가 최고 권력자에게 찍힌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馬雲)의 시련이 끝이 없다. 이번엔 후배 기업가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대학 간판이 내려지고 총장에서도 물러나는 수모를 겪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마윈이 자신이 세운 ‘후판(湖畔)대학’ 총장직에서 물러난다고 24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앞서 후판대학 SNS 계정 이름도 ‘저장성 후판창업연구센터'로 바뀌었다.
FT에 따르면, 익명의 후판대학 관계자는 “마윈은 후판대학에서 공식적으로 어떠한 고위직 직함도 보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관계자들은 “마윈은 대학에 연결 고리를 두고 싶어 한다”면서 “훗날에는 강의를 맡을 수 있다”고 했다.
대학의 한 관계자는 “당국은 후판대학 네트워크가 중국 공산당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5년 마윈은 후판대학 첫 신입생들 앞에서 “우리는 후판대학이 300년간 운영되길 바란다”고 했다.
지난 17일에는 후판대학 소셜미디어 계정 이름이 ‘저장성 후판창업연구센터’로 바뀐 사실이 알려졌다. 후판대학은 교육 기관이 아니라 ‘민정부(중국의 행정안전부 격) 산하 비영리 사회서비스 조직’이라 표시됐다. 이날 인터넷에는 인부들이 ‘후판대학’이라는 표지석을 가림막으로 가린 채 ‘대학’이라는 글자를 지우는 사진도 올라왔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자사가 운영하는 SNS 계정을 통해 “후판대학은 학위를 수여하는 교육 기관이 아니라 사적으로 운영되는 사교 조직”이라면서 “그곳의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집단에 소속돼 관계를 만들고 이득을 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회사가 당국의 정밀 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은 후판 학생을 뒷받침할 지지 세력 양성에 매진했다”고 비판했다.
후판대학은 지난달 신입생 모집을 연기했다. 대학 홈페이지에 게시돼 있었던 마윈의 얼굴 사진도 평범한 교실 사진으로 대체됐다.
마윈이 2015년 설립한 후판대학은 알리바바 본사가 있는 저장성 항저우의 후판화원단지에서 이름을 따왔다. 마윈이 직접 초대 총장을 맡을 정도로 애정을 쏟았다. 후판대학은 창학 선언문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문명 시대, 기업가 정신을 가진 차세대 기업가를 양성한다”고 밝혔다.
대학은 문을 열자마자 마윈과 인연을 맺으려는 기업인들이 몰렸다. 학교 측은 창업 후 3년 이상, 연 매출 3000만위안, 30인 이상 고용, 3인 이상 추천 등을 충족해야 하는 조건을 걸었다. 5년간 이 학교에는 1만1788명이 지원했지만 255명만 선발(합격률 2%)돼 “하버드보다 들어가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마윈은 “후판대학은 다른 비즈니스 스쿨과 다르다. 기업가들에 어떻게 창업을 할 지 가르치고, 창업한 기업이 더 오래 가도록 돕는 곳”이라며 “이 대학의 꿈은 300년간 운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마윈이 정부에 단단히 찍히며 이 꿈도 위태로워졌다. 마윈은 작년 10월 공개 석상에서 중국 정부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 이후 중국 당국의 압박을 받아왔다. 이후 7개월 동안 일체 외부 활동을 하지 않던 마윈은 지난 12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알리바바 본사에서 열린 사내 단합행사 ‘알리 데이’(Ali Day)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흰머리가 늘고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중국 정부는 마윈에게 국내에 머무르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에 대한 보복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알리바바 자회사인 앤트그룹을 홍콩·상하이 증시에 동시 상장하려던 계획이 예정일을 이틀 앞두고 중국 정부에 의해 전격 보류됐다. 지난달에는 반독점 위반으로 알리바바그룹에 3조원대 벌금이 부과되기도 했다. 중국 당국이 반독점 위반으로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으로는 최고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