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부터 일방적인 무역 보복을 당해오던 호주가 4월21일 중국에 카운터펀치 한방을 날렸습니다. 남부 빅토리아주가 2018년과 2019년 중국과 맺은 두 건의 일대일로 협약을 연방정부 직권으로 취소해 버렸죠.
일대일로는 중국에서 유럽, 아프리카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 경제 협력 인프라를 구축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중국의 글로벌 리더십 확보를 위한 전략적인 사업으로 해 시진핑 주석이 집권 초부터 구상하고 추진해온 역점사업이죠.
협약 자체는 초기 단계여서 취소로 인해 중국이 입을 경제적 피해는 거의 없을 듯합니다. 그보다는 시 주석의 체면을 건드린 점이 불쾌하겠죠.
중국은 분을 참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협약 취소 소식을 전한 국영 CCTV 기사에는 수천 건의 댓글이 달렸어요. ‘미국의 앞잡이’ 같은 표현은 점잖은 축에 속합니다. ‘미쳤다’ ‘단단히 병이 들었다’ ‘죽여버려야 한다’는 등의 원색적인 욕설이 난무하고 있어요. 감히 중국에 대들었다는 점이 기분 나쁘다는 겁니다.
◇ 작년 대중 수출 2.16% 감소 그쳐
호주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중 무역 의존도가 20%를 넘는 국가입니다. 수출만 따지면 그 비중이 35% 이상이죠. 그런데도 중국의 협박에 전혀 굴하지 않습니다.
중국의 무역 보복은 작년 5월부터 시작됐죠. 호주가 화웨이의 5G 네트워크 사업 참여를 금지하고,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국제사회의 독립적인 조사를 주장하고 나서자 칼을 빼들었습니다. 유연탄, 쇠고기, 보리, 면화 등 주요 호주산 수입품에 대해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고 수입 불허 조치를 취했죠.
그런데 지난 1년간의 무역 실적을 살펴보면 의외로 호주가 입은 타격은 크지 않았습니다. 호주의 작년 대중 수출은 1452억 호주달러로, 2019년(1484억 호주달러)에 비해 2.16% 줄긴 했죠. 하지만 코로나 19 상황을 감안하면 나쁜 실적이 아닙니다.
◇ 와인, 랍스타 등 일부 타격
중국의 경제 보복이 잘 먹히지 않는 것은 대중 수출액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철광석을 건드릴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호주산 고순도 철광석은 대체재가 거의 없어서 수입을 제한하면 오히려 중국 제철소들이 피해를 보게 됩니다.
유연탄과 면화, 보리, 쇠고기 등은 수출이 크게 줄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 멕시코, 베트남 등지로 판로를 다변화해 대중 수출 감소분을 매꿨습니다. 호주산 와인과 랍스타 등은 타격을 입었는데,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고 하네요.
◇ 피해 있어도 민주주의, 인권 양보 못해
프란세스 애덤슨 호주 외교통상부 차관은 4월초 애들레이드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중국의 무역 보복에 대한 호주의 입장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는 “호주 정부는 서로의 입장 차이를 토론하면서 상호 이익을 위해 대화하고 협력하기를 원하지만, 중국은 대화와 협력의 전제로 우리에게 핵심 국익을 양보하라고 한다”고 했죠. 그러면서 핵심 국익으로 모든 국가가 동의하는 규칙의 준수, 학문과 언론의 자유 등을 들었습니다.
댄 테한 무역·관광·투자부 장관도 중국이 “신장 위구르 제재에 참여하면 그에 상응하는 보복을 할 것”이라고 위협하자 “나라의 주권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죠. 중국에 물건 좀 더 팔겠다고 민주주의와 인권, 언론 자유 같은 보편 가치를 양보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경제 보복으로 호주의 콧대를 꺾어보려 했던 중국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처지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