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착공할 대통령궁 조감도 - 인도네시아의 새 수도로 결정된 보르네오섬 동칼리만탄 ‘누산타라’에 세워질 대통령궁의 예상 조감도. 건물 뒤쪽으로 인도네시아의 국조(國鳥) 가루다의 몸체를 병풍처럼 만들어 세웠다. 올해 착공한 뒤 본격적인 공공기관의 이전은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해인 2024년 시작되며 모든 수도 이전 작업은 2045년까지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인스타그램

인구 2억7500만 세계 4위 인구 대국 인도네시아의 숙원 사업인 수도 이전이 올해부터 시작된다. 인도네시아 의회는 지난 18일(현지 시각) 수도를 자바섬의 자카르타에서 1200여㎞ 떨어진 보르네오섬 동칼리만탄으로 이전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보르네오섬 정글 한가운데 466조루피아(약 38조8644억원)를 투입해 서울 면적 4배 넓이(2560㎢)의 새 수도를 건설하는 공사가 올해부터 시작된다. 새 수도의 이름은 ‘열도(列島)’라는 뜻의 ‘누산타라(Nusantara)’. 인구 1057만 대도시 자카르타는 수도 지위를 넘겨주지만, 최대 도시이자 경제·금융 중심지, 교통 관문으로서 위상은 유지할 전망이다.

앞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 시작 직후인 2019년 11월 천도(遷都)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첫 삽을 뜬 뒤 2024년부터 공공기관 이전을 시작해 2045년에야 마무리되는 중장기 프로젝트다. 앞서 미얀마가 2005년 양곤에서 네피도로, 카자흐스탄이 1997년 알마티에서 아스타나(현 누르술탄)로 수도를 옮긴 사례가 있다. 이번 천도가 다른 나라 사례들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인도네시아의 국제적 위상 때문이다.

인도네시아는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원 10국의 선도 국가다. 인구·영토·국내총생산(GDP)의 아세안 내 비율이 각각 43%·41%·34%.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이슬람 국가라는 위상도 있다. 동북아의 한국·일본·중국 등과 더불어 G20(주요 20국) 멤버기도 하다. 아세안 본부가 위치한 자카르타는 일국의 수도를 넘어 동남아의 정치·경제 중심지로 인식돼왔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이전 논의는 국가 균형 발전 차원에서 시작됐다. 인도네시아는 수마트라·자바·보르네오 등의 큰 섬들을 포함, 1만7000여 섬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총인구의 56%가 전체 면적의 7%에 불과한 자바섬에 몰려 살고 있다. 자카르타·수라바야·반둥 등 대도시가 몰린 자바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수도를 새로 지을 경우 국토 균형 발전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자카르타가 다른 나라 수도에 비해 홍수·지진 등의 자연 재난을 자주 겪는 것도 천도가 필요한 이유로 꼽혀왔다.

인도네시아 새 수도

수도 이전은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 집권기인 1950년대부터 추진됐다. 하지만 입지 선정 난항, 경제난, 정치적 혼란으로 지지부진했다. 그 사이 인구·자본의 자카르타 쏠림 현상은 더욱 심화돼 국가적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자카르타는 원래 전체 면적의 40%가 해수면보다 낮은데, 도심 난개발이 계속되면서 지반 침하 현상이 빠르게 진행됐다. 영국 BBC는 “현재 지반 침하 속도가 이어질 경우 2050년쯤에는 도시 전체가 물에 잠길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며 “자카르타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가라앉는 도시”라고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7월 국가안보국 연설에서 기후온난화 문제를 언급하면서 “10년 뒤 인도네시아는 물에 가라앉는 수도를 옮겨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을 정도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인 2024년 외교부·국방부 등 정부 핵심 4개 부처를 선도적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군부·종교지도자·정치 엘리트가 아닌 서민 출신으로 처음 대통령에 당선돼 재선에 성공한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숙원이던 수도 이전 성사를 임기의 주요 업적으로 남기고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정부 계획대로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적지 않다. 새 수도에 들어설 대통령궁 디자인은 당초 인도네시아의 국조 가루다의 거대한 몸체를 병풍처럼 둘렀다가 비현실적이고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머리 부분을 빼버리는 등 초반부터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40조원에 육박하는 사업비의 80%는 민간에서 조달하거나 민관 합작 프로젝트로 충당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코로나 대유행으로 경기가 침체된 국면에서 투자 유치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인도네시아는 정글 지대에 들어서는 새 수도를 친환경 청정 도시로 조성한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오히려 새로운 환경 재앙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보르네오 지역 환경단체 연합은 지난 2020년 낸 보고서에서 “수도 이전 작업의 배후에는 보르네오에 탄광을 소유한 광업회사들이 있다”며 “수도 건설로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경우 이들은 석탄 공급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게 된다”고 말했다. 영국 BBC도 “새로운 도시가 들어서면 삼림이 파괴돼 야생동물이 생존 위협에 처하게 되고, 대대로 이곳에서 살아온 원주민들의 터전과 문화 유산이 파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는 천도 계획을 세우면서 한국 세종시 사례를 적극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트라 수라바야무역관은 최근 보고서에서 “인도네시아 정부는 ‘세종시 모델’을 벤치마킹 요소로 삼을 것이라 밝혔고, 인도네시아에 인력을 파견한 한국 공공기관들과 현지 민간기업 사이 수도 이전 협력팀도 구성해 활동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