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주재 회의에서 관리들이 발언 시간의 13%를 ‘예스, 써(Yes, sir)”라는 표현에 쓰고, 장관실의 커피 브랜드를 바꿀 때에도 ‘기안(起案)’이 필요하고, 회의에선 서로 ‘상급자’인 양 의자 높이를 올리고….

카우시크 바수 코넬대 교수/kaushikbasu.org

인도 출신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카우시크 바수(69) 미 코넬대 석좌 교수는 6월말 자신이 인도 정부의 수석경제고문으로 일하면서 겪었던 ‘문화 충격’을 담은 자서전 ‘정책결정가의 저널(Policymaker’s Journal)’을 냈다. 영국의 BBC 방송이 14일 바수 교수의 ‘상상’을 뛰어넘었던 인도 관료주의의 단면들을 소개했다. 바수 교수는 2009~2012년 인도 연방정부의 초빙으로, 코넬대를 휴직하고 수석경제고문으로 일했다.

◇공무원 사회에선 “예스, 써” 남발

인도 공무원 사회에선 상급자와의 대화에선 “예스, 서”가 관용어처럼 말끝마다 붙는다. 바수 교수는 장관과의 회의에서 얼마나 이 표현이 나오는지 세어봤다. 한 관리는 분당 16번 썼다. 이 말을 하는 시간이 0.5초라고 계산하면, 이날 이 관리는 발언의 13%를 “예스, 써”에 썼다.

◇화장실 청소 인력 추가 투입에도 ‘기안(起案)’ 필요해

바수 교수는 “아무리 자잘한 일이라도, ‘사전 허가(prior permission)’이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자잘한 일’에는 아픈 친척 방문을 위해 하루 휴가 내는 것부터 장관실의 커피 제품명을 바꾸는 것, 화장실 청소에 추가 인력을 투입하는 것이 모두 포함된다. 그는 “이런 모든 제안은 두꺼운 서류철에 담겨, 이 방 저 방을 돌며 고위 관료들의 모든 승인을 받아 장관까지 올라간다”고 썼다. 인도 고용 인력의 57%는 공무원이다. 이런 문화에서 ‘지연’은 필연적이다. 바수 교수가 공무원들의 보고서류에서 흔히 발견되는 44개의 표현 중에는, ‘신속 조치 필요’ ‘지연 불가(不可)’ ‘지연 이유 설명’ ‘오늘/조기/즉시 답변’ ‘오늘 발행’등과 같이 시간과 관련된 표현이 특히 많았다.

◇회의석상에선 저마다 슬그머니 의자 높이 올려

회의 때 남들을 살짝 내려다 볼 수 있는 의자는 ‘상급자’ 신분을 상징한다. 그래서 모여서 회의할 때면, 바수 교수도 슬쩍 의자 밑의 높낮이 레버를 부드럽게 당겨 의자 높이를 올렸다. 문제는 참석자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하는 경우였다. 이제 상대적 높낮이는 사라지고, 모두 다리가 바닥에 닿지 않는 의자 높이에서 회의하게 된다.

◇”문 노크(knocking)는 무례”

관청에서 남의 사무실 문을 일단 노크하고 들어가는 것은 인도에선 “불공손한 일”이었다. 바로 그 방으로 들어가거나, 그럴 권한이 없으면 못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높은 습도로 인해, 인도의 나무 문짝은 부풀어 올라 문틀에 꽉 끼어 열려면 힘껏 밀어야 했다. 그러나 드물게 부드럽게 열리는 문도 있는 법. 바수 교수는 잔뜩 힘줘서 문을 열었다가, 종종 ‘대포알’처럼 남의 사무실에 ‘난입’하기도 했다.

◇화장실 수건에도 위계질서 담겨

인도 연방정부 건물의 1층 화장실은 주요부처 장관 전용 '엘리트 화장실'이 따로 있고, 수건 수납 공간마다 장관의 직책이 적혀 있다. 사진은 일반적인 자료 사진.

연방정부 관청의 1층에는 재정‧국세‧예산 3개 부처의 장관들만 사용할 수 있는 ‘엘리트 화장실’이 있었다. 아예 수건 수납공간도 이 세 장관의 직책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바수 교수는 인플레이션 통제와 적자재정 회의석상에서 대놓고 이 문제를 따졌다. “왜 내 수건은 없소? 정부 초빙으로 온 나도 1층 화장실을 써야겠소.” 곧 CEA(Chief Economic Advisor‧수석경제고문)라고 적힌 네 번째 수납 공간이 마련됐다.

2020년 세계은행이 조사한 ‘사업하기 쉬운 나라’ 랭킹에서 인도는 190국 중 63위였다(1위 뉴질랜드‧5위 한국‧31위 중국). 인도 공무원 사회에는 여전히 형식적이고 숨 막히는 관료주의가 만연하다. BBC 방송은 바수 교수에게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제국(British Raj)에서 온 것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는 “식민 잔재인 것은 맞는데, 관료들도 좋아하게 된 것”이라며 “일종의 스톡홀름 증후군(인질이 납치범에게 애착, 온정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고나 할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