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3~15일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뮌헨안보회의 주최 측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를 국제 질서 파괴자로 비난하는 보고서를 발표해 파장이 예상된다. 뮌헨안보회의재단은 9일 펴낸 보고서 ‘파괴의 한가운데서’에서 “세계가 ‘철구(鐵球)를 휘두르는 정치(wrecking ball politics)’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2차대전 종전 이후 구축되어온 ‘대서양 동맹’ 즉 자유주의 세계 질서를 철구를 휘두르듯 파괴하고 있다고 비유한 것이다. 보고서는 “서구 사회에서 개혁보다는 파괴를 선호하는 정치 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며 “불도저, 크레인, 전기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존경받는 새로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기존과 제도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데 가장 강력한 인물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라며 “우리는 협력보다는 거래에 의해, 공익보다는 사익에 의해, 보편적 규범보다는 지역 패권국에 의해 좌우되는 세상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보고서는 매가(MAGA·미국을 더욱 위대하게)로 불리는 트럼프 핵심 지지층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DEI(다양성·포용성·형평성) 정책을 폐기하는 것을 두고 “이들은 국경 개방과 다문화주의, 성 평등, 자유주의적 국제주의 정책이 미국을 ‘문명적 퇴보’에 빠뜨린다고 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퇴보’에 맞서기 위해 이들은 자신들이 문명적 원칙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재확립하고 소위 ‘페미니즘 이전의 백인 기독교’를 부활시키려는 ‘문화 전쟁’을 시작했다”고도 했다. 이어 “이 분위기 속에서 파괴, 혼란, 그리고 철거가 정치적 수단으로 용인되고 있다”면서 트럼프가 대규모 연회장을 짓기 위해 백악관 일부 건물을 철거한 것을 예로 들었다.
이번 보고서는 지난해 12월 미국이 발간한 국가안보전략(NSS)도 비판했다. “NSS에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항목이 포함조차 돼 있지 않았고, 트럼프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불편할 정도로 친밀한 태도를 자주 보였다”고 했다. 지난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트럼프와 언쟁 끝에 백악관에서 쫓겨난 모습과 알래스카에서 트럼프가 푸틴을 환대하는 장면을 대조시키며 “유럽의 많은 사람은 오랫동안 자신들의 주장 역할을 해왔던 선수가 숙적의 팀에 합류한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고 했다.
1963년 창설된 뮌헨안보회의는 ‘안보 분야의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며 서방의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와 전문가들이 집결해 안보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앞서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직후인 지난해 회의에서는 J D 밴스 부통령이 참석해 유럽 우방들의 극우 정치 세력에 대한 통제를 노골적으로 비난해 거센 반발을 샀다. 대서양 동맹이 머리를 맞대고 국제 안보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갈등의 장으로 변질되는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