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접근을 금지할 것입니다.”
3일(현지 시각)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정부정상회의 개막 연설에 나선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소셜미디어를 ‘법이 무시되고 범죄가 관용되는 실패한 국가(failed state)’에 비유하며 “오늘날 우리 아이들은 결코 홀로 탐색해서는 안 될 공간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고 했다. 산체스 총리의 공식 선언에 따라, 스페인 정부는 16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원천 금지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올해 들어 세계 각국에서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원천 차단하려는 움직임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호주에서 세계 첫 ‘청소년 소셜미디어 금지법’이 시행된 지 약 두 달 만이다. 영국 시큐리티브리프는 최근 디지털 안전 기술 업계의 집계를 인용하며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접근을 막는 법안을 추진하거나 검토 중인 나라는 40개국에 달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스페인·프랑스·덴마크·튀르키예·말레이시아 등이 잇따라 입법 절차에 돌입했고, 이르면 올해 안에 이들 국가에서 법안이 시행될 전망이다.
◇소셜미디어에서 ‘자유로워진’ 아이들
소셜미디어는 성장기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지목되어 왔다. 극심한 인터넷 중독을 야기하는 것은 물론, 온라인상의 집단 따돌림, 폭력, 성착취 등 범죄가 들끓었기 때문이다. 그간 소셜미디어 기업은 부모가 아이의 계정을 함께 관리하거나 낯선 이와 대화를 차단하는 등 청소년 보호를 위한 정책들을 내놨지만, 부작용을 완전히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가운데 호주에서 금지법이 시행되기 시작하면서 그 동안 망설이던 나라들도 적극적인 규제로 노선을 정하게 된 것이다.
호주에선 금지법 시행 후 한 달 만에 약 470만개의 소셜미디어 계정이 삭제됐다. 이는 전체 청소년 소셜미디어 계정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효과는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드니에 사는 14세 소년 일리야는 호주 ABC 방송에 “실시간으로 소식을 확인하거나 답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어져 한결 편해졌다”고 했고, 14세 소녀 에이미는 영국 BBC 방송에 “스냅챗을 못 쓰게 되면서 방과 후 폰에서 친구랑 통화하는 대신 밖에 나가서 달리기를 한다”며 “처음엔 좀 힘들었는데 6일 정도 지나니 자유로워진 느낌”이라고 했다. 소셜미디어를 몰래 쓰려고 출생 날짜를 속이거나, 거주 국가를 우회하는 등 ‘꼼수’도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호주 부모들은 “금지법이 생긴 후 아이들이 소셜미디어를 쓰지 않도록 설득하기가 예전보다 훨씬 쉬워졌다”고 말한다. 시드니 모닝 해럴드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연령 제한을 우회하는 위법 행위에 더 강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2026년, ‘청소년 소셜미디어 금지’ 원년 되나
이 같은 ‘호주 모델’은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달 15세 미만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이 하원을 통과했고, 이달 중으로 상원 표결을 앞두고 있다. 상원을 통과할 경우 프랑스는 호주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청소년의 소셜미디어 사용을 금지하는 나라가 된다. 튀르키예 정부는 지난 2일 비슷한 금지법을 발의했고, 덴마크는 지난해 11월 정부 및 여야가 15세 미만 소셜미디어 금지 정책 합의를 발표한 후 올해 안으로 법을 시행하겠다는 목표로 구체적인 법안 준비에 나섰다. 말레이시아 역시 올해 안으로 금지법 시행을 위해 관련 세부 법안을 손보고 있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동안 관련법을 거세게 반대해왔던 소셜미디어 기업 내부에서조차 법 위반으로 거액의 과징금을 물지 않기 위해 연령 인증 기술 등을 철저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국내에선 청소년 이용 시간 제한 등에 대한 논의는 있지만, 전면 규제 움직임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금지법이 광범위하게 확산될 경우,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입는 타격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 세계 소셜미디어 사용 인구는 약 52억명으로, 그중 16세 미만 이용자는 약 3억~5억명에 달할 것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청소년 금지법으로 당장 이들 기업이 입는 매출 타격이나 트래픽 손실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들 청소년이 성년이 된 후 수년간 쓰지 않은 틱톡·인스타그램·스냅챗 등으로 돌아갈지는 미지수라는 점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기존 빅테크 플랫폼의 이용자 이탈은 더욱 커지고,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을 앞세운 신규 서비스가 등장하며 소셜미디어 업계에 지각변동이 생길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