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핵무기의 90%를 보유한 러시아와 미국의 핵무기 규모 제한 협정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의 종료를 하루 앞둔 4일 미국·중국 및 러시아·중국 간 정상의 연쇄 통화가 이뤄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날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가졌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두 정상 간 통화는 지난해 11월 이후 70여 일 만이다. 이날 양국 정부는 정상 간 통화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뉴스타트 종료 이후 강대국들의 핵무기 관리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왔다.

시진핑이 이날 트럼프와의 통화 몇 시간 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화상으로 회담을 하고 뉴스타트 만료와 관련해 심도 있게 논의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 매체들에 따르면 1시간 25분가량 진행된 중·러 정상 간 화상 회담에서 뉴스타트 만료 현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푸틴은 자신이 트럼프에게 뉴스타트를 1년간 연장하자고 제안했지만 아직 확답을 받지 못한 사실을 시진핑에게 설명했고 “러시아가 안보 상황을 면밀히 분석해 바탕으로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날 미·중, 중·러 연쇄 통화를 계기로 뉴스타트 만료 이후 핵무기 통제에 관한 핵보유국 간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뉴스타트 이행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러 관계가 악화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후속 협정 합의는 진척이 없다.

국제 사회에선 “냉전 시기부터 50년 넘게 유지돼온 ‘핵 안전판’이 사라지는 상황”이라며 “향후 혼돈의 ‘핵 군비 경쟁’에 중국 등 다른 핵보유국들이 뛰어들며 국제 안보 환경이 크게 불안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인도와 파키스탄 등 비공식 핵보유국들의 군비 증강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일고 있다.

2010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프라하에서 서명한 뉴스타트는 양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전략폭격기 같은 핵 투발 수단을 700기, 여기에 탑재하는 핵탄두를 1550기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2023년 푸틴이 “미국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며 러시아에 적대 행위를 한다”며 뉴스타트 중단을 선언하자 미국 역시 핵무기 정보를 러시아에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만료 이후 안보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됐다.

지난해 9월 푸틴은 “뉴스타트를 1년 연장할 의향이 있다”고 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달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만료되면 만료되는 것”이라고 해 최근까지 미·러 정상 간 기싸움이 전개되는 양상이었다.

이날 시진핑과 푸틴은 화상 회담에서 트럼프의 군사적 압박으로 반미 정권이 무너졌거나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있는 베네수엘라·이란·쿠바 관련 현안도 논의했다. 시진핑은 또 푸틴에게 올 상반기 중국을 공식 방문해줄 것도 요청했다. 이에 따라 올해 11월 중국 선전에서 예정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포함해 올해에만 푸틴이 두 차례 중국을 방문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올해 4월을 전후해 트럼프의 방중(訪中)도 예정돼있기 때문에 시진핑은 상반기에 푸틴·트럼프와 연쇄적으로 안방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