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주한 가나대사관에서 선교사 자녀로 태어나 한국인 최초로 가나대사가 된 최고조 대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은 최 대사의 가족사진./박성원 기자

“저는 한국에서 태어나 가나에서 자란, 가나 한국인입니다.”

서아프리카 ‘가나’라고 하면 한국인 머릿속에 두 가지가 떠오른다. 유명 여배우들이 베어 물던 ‘가나 초콜릿’. 그리고 월드컵 때마다 한국 대표팀을 긴장시킨 축구 강호. 새로운 ‘가나의 아이콘’이 될 인물이 한국에 왔다.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가나로 이주한 뒤, 주한 가나 대사가 되어 돌아온 최고조(48·한국명 최승업) 대사다. 6남매의 아빠이기도 한 그를 16일 서울 용산구 대사관저에서 만났다.

그는 “탁구공이 3m 허공으로 솟구쳤다가 떨어지는 ‘스카이 서브’가 제 첫 외교였다”고 했다. 1977년 강원도 춘천 소양강 인근에서 선교사였던 아버지 최용순(80)씨와 어머니 김영신(76)씨의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92년에 부모를 따라 가나에 갔다. 영어를 못 하던 그가 현지 친구들 틈에 낄 수 있었던 건 탁구 덕분이었다. 당시 한국 국가대표 김택수 선수의 ‘스카이 서브’를 흉내 냈다. 공을 3m 높이로 띄워 올려 낙하 속도로 스핀을 거는 기술이다. 타 학교와 시합에서도 이기며 영웅이 됐다. 이때 얻은 현지 이름이 ‘고조(kojo)’다. 가나에서 월요일에 태어난 남자아이에게 붙이는 이름이다. 그는 이를 ‘최’와 합쳐 ‘최고조(Highest Peak)’로 해석했다. “스카이 서브가 공이 최고점으로 올라가는 기술 아닙니까. 어쩌다 보니 딱 맞아떨어졌어요.”

1980년 춘천 소양강에서 친형, 친누나, 동네 형들과 함께 찍은 사진. 가운데 빨간 옷을 입은 세 살 아이가 최고조 대사다. /주한 가나 대사관

가나에 정착한 뒤 현지 중학교를 거쳐 영국식 국제고등학교(IGCSE)와 가나국립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1999년 스물한 살이던 최 대사는 “가나에서 사업가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한국의 디지털 프린팅 기술을 현지에 보급하는 사업을 시작했고, 가나 귀화도 신청했다. 이후 통신 유통업체 ‘나나텔레콤’을 창업했다. 가나 1위 통신사 MTN의 핵심 파트너사인 나나텔레콤은 2012년 기준 연매출 약 920억원으로, 최대사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성공한 한인 기업인 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신청 16년이 지난 2015년 귀화 허가가 났다. 같은 해 가나인에게만 주어지는 정부의 은행 라이선스를 받아 핀테크 기업 ‘페이 스위치’를 설립했다. 현지 은행 및 금융기관에 통합 디지털 결제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업이었다. 이 사업이 성장하면서 가나 경제계에서 입지를 굳혔다. 그는 이 공로로 가나 기업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2010년부터는 코트라(KOTRA) 가나 명예관장을 맡았다. 올 초 취임한 존 드라마니 마하마 가나 대통령이 그의 가치를 알아보고 지난 7월 주한 대사로 임명했다. 정식 업무를 시작한 건 지난 11일이다.

기업인 출신답게 취임 직후 ‘오픈 도어 폴리시(Open Door Policy)’를 선언했다. “서로 피부를 맞대고 소통하자”는 의미다. 그는 “사업가로서 빠른 보고, 빠른 결정, 직설화법을 버리지는 못했다”면서도 “‘상대가 말할 때 부정하고 싶으면 고개를 끄덕여라. 긍정하면 미소를 지어라’ 같은 정무적 외교술은 익혔다”고 했다.

지난달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 최고조 가나 대사가 가나 전통 의상을 입고 이재명 대통령, 조현 외교부 장관과 함께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뉴스1

2027년은 한국·가나 수교 50주년이다. 가나에선 ‘골든 주빌리(Golden Jubilee)’라고 한다. 50년간의 관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50년을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는 한국의 기술·인프라와 가나의 자원·문화를 결합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한국에 없는 것을 가나가 갖고 있다. 자연, 광물, 자원이다.” 이어 “한국이 목적과 결과를 중시한다면, 가나는 그 과정의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이것이 가나의 소프트웨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나와 함께라면 고독도 감미롭다’는 옛 광고 카피처럼, 바쁜 한국 사회에 가나의 여유를 접목하고 싶다고 했다.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주한 가나대사관에서 선교사 자녀로 태어나 한국인 최초로 가나대사가 된 최고조 대사가 본지 기자들을 위해 커피를 내리고 있다. /박성원 기자

부인 백시은(38)씨와는 가나 국립대학교에서 만났다. 백씨는 어학연수 겸 선교 활동을 위해 가나에 갔고, 최 대사는 통신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를 처음 본 순간 “나와 결혼할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부부는 여섯 명의 자녀를 낳았다. 첫째 유나(16)부터 막내 샤인(1)까지. 둘째와 셋째는 쌍둥이 강과 건(14)이다. 넷째 영(11), 다섯째 안나(8)가 있다. 다섯째 ‘안나’는 “이제 더 이상 안 낳아(Anna)”라고 선언하며 지은 이름이다. 그런데 여섯째가 생기면서, 막내 별명은 ‘또나’가 됐다.

학업을 위해 케냐와 강원 횡성 등에 거주하는 첫째와 둘째·셋째 쌍둥이를 제외한 다른 형제 자매들, 지금은 가나에서 돌아온 아버지 최용순씨 등 6명의 대가족이 함께 대사관저에서 살고 있다. 곧 어머니 김영신씨도 가나에서 한국에 입국할 예정이라고 한다. 최 대사를 포함한 형제 자매 모두 한국인과 결혼했다. 형도 목사로, 가나에서 선교사와 학교 등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가나의 평균 출산율은 3.6명으로 고출산 국가다. “자녀가 6명이라고 하니 가나인들이 ‘진짜 가나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더라고요. 하하.” 설 연휴에는 6남매가 외갓집과 친척 집을 오가며 윷놀이를 하고 세배를 드릴 계획이다. 아이를 더 낳고 싶어도, 백씨가 제왕절개를 4회나 한 탓에 의사의 만류로 더 낳지는 못한다고 한다. 최 대사는 저출산 한국에 메시지를 던졌다. “아이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선물입니다. 가족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마세요.”

1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주한 가나대사관에서 선교사 자녀로 태어나 한국인 최초로 가나대사가 된 최고조 대사가 본인 가족 사진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박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