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4일 일본 도쿄 자유민주당 당사에서 열린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연설하고 있는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총재. photo AP·뉴시스

2025년 10월, 일본 정치 지형의 근간이었던 자민당과 공명당의 26년 연립 정권이 붕괴했다. 자민당의 ‘정치자금 스캔들’ 대응에 공명당이 결별을 선언하면서, 총리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던 다카이치 사나에 자민당 신임 총재 체제는 출발부터 강력한 시험대에 올랐다. ‘반(反)자민당’ 기치를 든 야권의 재편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10월 말로 예정된 총리 지명 선거는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에 진입했다.

일본에서는 자민당 장기 집권에 대한 피로도가 크다. 일본의 정치평론가 요시다 야스토(吉田康人·전 오사카시 구청장)는 주간조선에 “이번 선거는 자민당에 대한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55년 체제’라 불리는 전후 정치구조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라며 “일본 국민이 ‘과반 정당이 권력을 독점하는 체제를 끝내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이 체제는 안정적인 통치를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권력의 고착과 정치의 무력화를 낳았다”며, “이제는 과반 정당이 국가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당이 정책별로 연합하고 협의하는 다당제 구조로 이행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요구에도 자민당의 야당 ‘끌어안기’ 노력이 계속되고 있어 정권교체가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논의되는 시나리오는 세 가지다.

1. 보수 재편(유신회·국민민주당 협력)

현재 가장 현실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보수가 뭉치는 것이다. 제1당 지위를 유지한 자민당이 일본유신회(유신회)와 국민민주당과의 사안별 협력을 통해 과반을 보충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자민당의 정권 연속성과 중도 보수 유신회·국민민주당의 정책 영향력 확대를 보장하는 ‘보수 연합’ 윈윈 구도다. 오승희 국립외교원 교수는 “그나마 가장 안정적인 구도”라며, “국민민주당이 가세하면 정책 조정이 필수라 다카이치의 색채가 지나치게 극우·포퓰리즘 쪽으로 쏠리는 것은 일정 부분 완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여소야대라 결국 총리 단임(과도기) 내각이나 조기 해산, 총선 국면으로의 발전은 불가피하다”는 한계도 동시에 제시했다.

향후 총리 지명 투표에서 야권이 단일 후보를 내지 못할 경우, 자민당은 유신회와 국민민주당의 기권 또는 교차 지지를 얻어 총리직을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방위비 증액, 반도체·공급망 육성 등 ‘아베-기시다 노선’의 경제 안보 정책 기조는 유지된다. 다만 유신회가 요구하는 규제 완화·지방분권·노동개혁 분야에서 자민당의 정책적 양보가 예상된다. 우려도 있다. 오 교수는 “일본의 ‘정치와 돈’ 문제는 통일교, 구 아베파 후원금 등과 얽혀 있고, 다카이치는 구 아베파와 가깝기 때문에 근본 개혁은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가 많다”며 개혁의 난제를 지적했다. 다카이치 총리의 강경 보수 이미지가 도시 중도층의 반감을 부르면, 협력 파트너들이 이탈해 조기 총선 압박에 시달릴 가능성도 있다.

배윤 게이오대 선임연구원은 다카이치 체제하에서 국민민주당 및 유신회와의 연합 가능성이 낮다고 진단한다. 배 연구원은 “(보수 성향이 강한) 아소 다로 전 총리의 강한 영향력 때문에 국민민주당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와의 연정 역시 현실성이 높지 않다”며 “유신회 역시 소비세·국내 정책에서 다카이치·아소의 재정정책과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어 연합 가능성은 낮다”고 보았다.

2. ‘반(反)자민당’ 거국형 과도 연정

입헌민주당·공명당·국민민주당 등 야권이 ‘정치 개혁’을 공동 의제로 내세워 자민당을 배제한 단기 과도내각을 구성하는 시나리오다. 공명당의 이탈 명분이 정치자금법 개정인 만큼, 이는 가장 급진적인 개혁 노선이 될 수 있다. 현재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를 축으로 한 단기 ‘민생·정치개혁 내각’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오 교수는 노다 요시히코 입헌민주당 대표(전 총리)의 표현대로 “‘십수년 만의 찬스’로 국민이 만든 기회”라며, “원래 자민당과의 연정설이 우세했으나 다카이치의 우경화 흐름이 야권 연대의 공간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일본 요시다 평론가 역시 “다카이치의 우경화 흐름이 야권 연대의 공간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요시다 평론가에 따르면, 노다 대표의 구상은 ‘기업헌금 원칙 폐지’와 ‘감세’를 주요 의제로 삼아 실현 가능하다. 여기에 자민당 일부가 동참하면 결선투표 없이도 총리 지명이 가능해진다.

야권은 다마키 대표 등 중도 인사를 총리 후보로 내세워 정치자금법 전면 개정과 연금·물가 등 민생 안정 패키지를 공동 공약으로 내세우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오 교수는 “지금 국민이 원하는 건 정치자금 개혁과 실질적 생활개선 등 실익 있는 어젠다”라고 강조하며, 다마키 대표의 사생활 문제 등 걸림돌보다는 정책 실현 가능성에 유권자들이 더 무게를 둘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정책 공통분모가 협소해 내각 수명은 짧을 것으로 보이며, 예산·세제·연금 등 현안에서 균열이 생기면 조기 총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정권 교체 가능성을 높게 보는 배윤 연구원은 야권의 움직임을 “지금은 ‘고양이에게 방울을 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고양이에게 다느냐’가 중요하다”고 표현하며, “입헌민주당이 다마키(국민민주) 쪽으로 손을 잡을지, 아니면 유신회 요시무라 히로후미 쪽으로 갈지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야당 내부에서는 “야권 대연정을 통해 일본 정치를 쇄신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해 뭉치려는 분위기가 강하다는 것이다.

3. 소수 자민당 내각, 법안별 거래

자민당이 제1당 지위를 이용해 총리 지명에는 성공하지만, 고정 연합 없이 사안마다 유신회·국민민주당·공명당과 표 교환 거래에 의존하는 소수 내각으로 운영되는 경우다.

자민당은 여론 추이를 지켜보며 정치자금제도 개편, 선거제도 조정(권역 비례 확대 등) 등의 법안을 미끼로 야권의 협력을 받아내며 국회를 연명할 수 있다.

오 교수는 “과반이 안 되고 결선투표로 간다면 자민당이 구조적 이점은 있지만, 그 이상(총리 지명 이상)은 ‘아무것도 못 하는’ 내각일 수 있다”며, “종국적으로는 해산·재총선 트랙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내부적으로 다카이치 교체론도 제기되지만, 다카이치 총재가 고이즈미 등 경쟁자를 대거 등용하며 내부 결속을 모색하는 등 ‘해체 대기’ 상태에서 시간을 벌려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국정운영은 불안정해지고 임시적 보조금 정책이나 한시적 감세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국회의원 보궐선거나 지방선거가 분기마다 치러질 경우 사실상의 ‘정권 심판’이 계속돼 조기 총선 가능성을 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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