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신임 총통 취임식으로 한국과 일본의 의원외교 역량이 비교대상에 오르고 있다. 지난 5월 20일 대만 타이베이 총통부 앞에서 거행된 라이칭더(賴淸德) 신임 총통 취임식에 참석한 한국 측 인사는 ‘한·대만 의원친선협회’ 한국 측 회장을 맡고 있는 조경태 의원을 비롯해 부회장 정경희 의원, 조정훈 의원 등 국민의힘 의원 6명.
반면 일본은 ‘일화(日華, 일본·대만)의원간담회’ 일본 측 회장을 맡고 있는 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 자민당 의원을 비롯해 무려 31명의 초당파 의원들이 총통 취임식에 축하사절로 참석했다. 한국과 일본은 각각 1992년과 1972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모두 대만과 단교한 비(非)수교국이다. 한데 대만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의원외교에서는 6 대 31로 확연한 차이가 벌어진 것이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압승한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명에 같은 ‘민주’가 들어가는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 총통 취임식에 단 한 명의 의원도 보내지 않았다.
중국의 눈총을 무릅쓰고 대만을 찾은 의원들조차 대만 총통 취임식 참석과 관련한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대만 총통부나 외교부도 한국 의원들의 참석 사실만 짤막하게 밝혔을 뿐 별도 사진이나 발언을 공개하지 않았다. 대만 총통부와 외교부가 주요국 축하사절 중 사진과 발언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사실상 주대만 한국대사관 역할을 하는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 역시 이은호 대표가 취임식에 참석했으나 참석사실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외교부도 “개별 의원의 참석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반면 일화의원간담회 측은 대만 총통 취임식에 앞선 지난 5월 17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화의원간담회 소속 의원 31명을 파견할 뜻을 일찌감치 밝혔다. 아울러 후루야 게이지 일화의원간담회 일본 측 회장을 비롯해 일본 의원들은 대만을 찾은 이후에도 자신의 페이스북 등을 통해 대만 방문과 세부 일정을 세세히 공개하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총리 부인도 참석
일본 측은 ‘일화의원간담회’ 소속 31명 초당파 의원들과 별개로 작고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부인 아베 아키에(安倍昭恵) 여사도 대만을 찾았다. 대만 측은 아키에 여사를 영부인급으로 각별하게 대접했고, 라이칭더 신임 총통과는 별도 회담까지 열었다.
이 자리에서 라이칭더 총통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 안정, 번영과 발전을 유지하기 위해 대만과 일본이 계속 협력해 나가자”는 뜻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 아키에 여사는 취임식 직후 타이난(臺南)으로 장소를 옮겨 열린 축하연에도 재차 모습을 드러냈다.
이 같은 ‘의원외교’를 주도하는 ‘일화의원간담회’는 중·일수교(1972년) 이듬해인 1973년 꾸려진 조직이다. 이미 지난해로 창립한 지 50년이 넘었다. 1972년 중·일수교로 대만과 전격 단교한 직후 이미 별도의 외교채널을 구축한 셈. 이에 지난 5월 9일 일화의원간담회 총회 때는 차이잉원과 라이칭더 전·현 총통이 모두 영상으로 축사도 보냈다.
당시 라이칭더 신임 총통은 축사를 통해 “지난 4월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비롯해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필리핀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이 3자 정상회담 때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거론했다”며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일화의원간담회 소속 31명 의원은 취임식 직후 라이칭더 신임 총통 및 샤오메이친 부총통과 별도 오찬도 가졌다. 후루야 게이지 일화의원간담회 회장은 “많은 해외 대표단이 참석했지만 점심은 일본 대표단과만 했다”며 “신뢰와 유대의 상징”이라고 평가했다.
덕분에 일본과 대만의 관계는 ‘역대 최고’라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지난 2월 26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나루히토(德仁) 일왕 생일 축하연에는 차이잉원 당시 총통과 라이칭더 부총통(신임 총통)이 모두 참석하기도 했다. 한국과 대만은 모두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은 아픔이 있다. 대만은 1894년 청일전쟁 이듬해 시모노세키조약으로 일본에 할양된 터라 식민지배 기간이 한국보다 더 길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상상조차 못하는 장면이 타이베이에서는 펼쳐지는 셈. 대개 서울에서 열리는 일왕 생일 축하연에는 이른바 ‘국민감정’을 의식해 외교부 차관급이 참석하는 것이 관례다.
민주당, 신임 대만 총통 외면
반중(反中) 성향의 민진당과 친중(親中) 성향의 국민당 가릴 것 없이 대만과 전방위 채널 구축에 나선 것도 일본 외교의 특징이다. 후루야 게이지 의원을 비롯한 일화의원간담회 측은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 전 총통과 라이칭더 신임 총통을 만나는 동시에 국민당 소속 한궈위(韓國瑜) 입법원장(국회의장 격)과도 별도로 만나 친분을 다졌다. 한궈위 입법원장은 2020년 총통 선거 때 국민당 후보로 나서 민진당 소속 차이잉원 당시 총통과 맞붙었던 국민당의 거물이다.
일본은 대만 총통 취임식 불과 5일 전인 지난 5월 15일 장완안(蔣萬安)타이베이 시장이 도쿄를 찾았을 때 아소 다로(麻生太郞) 자민당 부총재(전 총리)를 비롯해 일화의원간담회 후루야 게이지 회장이 직접 맞이했다. 대만 수도 타이베이를 이끄는 장완안 시장은 장제스(蔣介石) 전 대만 총통의 증손이자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의 손자다. 대만 국민당의 차기 총통감으로 꼽히는 인사다. 한국은 지난해 9월 장완안 타이베이 시장이 방한했을 때도 조경태 의원과 조정훈 의원이 함께 조찬을 하는 데 그쳤다.
특히 일본이 집권 자민당을 비롯한 초당파 의원들로 축하사절을 꾸린 것과 달리, 한국은 국회 다수당이자 제1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은 신임 대만 총통 취임식에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나마 2016년 민진당 차이잉원 당시 총통 취임식 때는 당시 야당인 민주통합당 전순옥 의원이 조경태 의원을 비롯한 이은재·이운용 등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의원과 동행했었다. 전순옥 전 의원은 청계천에서 분신한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여동생이다.
2022년 12월 조경태 의원이 대만을 찾아 차이잉원 당시 총통과 여우시쿤(游錫坤) 당시 입법원장을 만났을 때는 국민의힘 소속 정우택·이달곤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이원욱 의원(현 개혁신당)도 동행했었다. 민주당 의원들이 라이칭더 총통 취임식에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것은 이재명 대표의 이른바 ‘셰셰(謝謝) 발언’을 의식한 조처로도 풀이된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총선 유세 때 “중국과 대만 국내 문제가 어떻게 되든 우리가 뭔 상관 있나”라며 “그냥 우리는 우리 잘 살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발언으로 외교가에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북한 의식해 중국에 저자세 외교
한국 국회의원들의 ‘선택적 의원외교’는 우리 외교부의 역할공간을 되레 축소시킨다는 지적을 받는다. 중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터라, 1992년 중국과 수교한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는 대만과 단교를 조건으로 중국과 수교했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일본 등 다른 서방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만의 현실적 존재와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해 전 세계 주요국은 대만과 비(非)정부 차원에서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정부에 소속되지 않은 개별 의원이 대만을 찾는 것은 ‘출국금지’ 외에는 달리 막을 방도도 없다.
실제로 미국, 일본 등은 비정부 인사 간 교류를 자국의 외교공간을 넓히는 카드로 십분 활용 중이다. 미국은 라이칭더 신임 총통 취임식에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부 장관,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브라이언 디스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등이 축하사절로 갔다. 마이크 폼페이오는 공화당 트럼프 전 행정부 때 국무장관, 리처드 아미티지는 공화당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 때 국무부 부장관, 브라이언 디스는 민주당 조 바이든 행정부 초대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을 지냈다. 민주당과 공화당을 아우르는 초당파 축하사절인 셈. 이번 총통 취임식에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호주 등 러시아를 제외한 주요 국가는 모두 비슷한 형식의 축하사절을 보냈다.
한국이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 중국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최대 원인으로는 북한 문제가 꼽힌다. 핵(核)을 가진 북한과 대치 중인 상황에서 북한에 대해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중국 입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측은 그간 한국의 이 같은 배려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해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있다. 되레 지난 4월에는 중국공산당 서열 3위인 자오러지(趙樂際)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과 만나는 등 북한에 오히려 힘을 실어주고 있다.
심지어 지난 5월 16일 베이징을 찾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난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회담 직후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쌍방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군사분야 억지활동으로 조선(북한)의 대결을 도발하고 무력충돌을 촉발함으로써 조선반도(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에 반대한다”고 북한 문제의 원인으로 미국과 그 동맹국인 한국·일본을 지목하고 나섰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이 대만 문제와 관련해 중국에 저자세로 일관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발도 나온다. 중국을 의식해 우리 정부가 공개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면, 일본처럼 국회의원들이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 우리 외교부의 역할공간을 넓혀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경태 의원은 “정부에서 간 것도 아니고 의원외교 차원에서 다녀온 것”이라며 “국회에 한·대만의원친선협회가 있는 만큼 회장으로서 당연히 취임식에 가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 외교부는 대만 총통 취임식과 관련한 주한 중국대사관 측의 문제제기에 “우리 정부의 대만 관련한 기본 입장은 변화가 없다”며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고 양안 관계가 평화적으로 발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