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월 28일 늦은 밤 미국 로스앤젤레스 도심의 녹음실 A&M 스튜디오에 마이클 잭슨·레이 찰스·다이애너 로스·케니 로저스 ·밥 딜런 등 최고 팝스타들이 모였다. 이들이 녹음실로 향하는 길에 큼지막한 손글씨로 이렇게 쓰여있었다. ‘자존심은 문 밖에 맡겨두고 들어오시오’. 46팀의 솔로 및 그룹이 이곳에 모여 녹음한 노래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합창곡이 된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 우리가 바로 세상이죠)’’다. 팝계의 수퍼스타들이 굶주림에 신음하는 아프리카를 돕자며 의기투합해 부른 노래는 지금까지도 지구촌 곳곳에서 애창된다.

1985년 1월 28일 LA의 녹음실에 모여 '위 아 더 월드'를 녹음하던 당대 최고 팝스타들. /We Are The World Facebook

하지만 사실 이 노래 녹음 프로젝트는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진행됐고, 자존심 센 가수들 사이엔 까칠한 장면도 연출됐다. 이 노래를 탄생시킨 39년전 그날 밤 뒷얘기를 전해주는 다큐멘터리가 넷플릭스 공개를 앞두고 최근 폐막한 최고권위 독립영화제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 선보였다. 응우옌 바오 감독이 연출한 96분짜리 다큐 ‘팝 음악의 가장 위대한 밤(The Greatest Night In Pop)’이다. 당시 참여 가수와 연주자, 매니저 등의 인터뷰를 통해 ‘위 아 더 월드’의 탄생 과정을 보여준다. USA 투데이 등 미 언론들이 이 영화를 통해 공개된 당시 뒷애기들을 최근 보도했다.

위 아 더 월드에 참여한 당대의 팝스타들. 왼쪽부터 폴 사이먼, 킴 칸스, 마이클 잭슨, 다이아나 로스. /IMDB

1984년 12월 영국 팝스타들이 모여 굶주리는 아프리카를 돕자는 자선곡 ‘두 데이 노 이츠 크리스마스(Do They Know It’s Christmas? 그들은 성탄절이라는 걸 알려나)’를 발표해 화제가 됐다. 라이어널 리치의 매니저 켄 크라겐이 리치에게 “우리도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라고 했다. 어쩌면 ‘그냥 해 본 소리’였을 수도 있었을텐데, 이 제안에 꽂힌 리치가 동료 음악인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아이돌 그룹 ‘코모도어스’ 출신으로 성공적으로 솔로로 전향한 리치는 당대 최고 팝스타이면서 지금도 오디션 프로 ‘아메리칸 아이돌’ 심사위원을 맡을 정도로 음악계 마당발이었다. 리치는 팝계 최고 실력자인 음반 프로듀서 퀸시 존스에게 앨범 제작을 부탁했다. 리치의 제안에 역시 ‘꽂힌’ 존스는 당대 수퍼스타 마이클 잭슨과 리치에게 공동으로 작사·작곡을 맡겼다.

'위 아 더 월드' 가수들로 장식된 1985년ㄴ 라이프지 표지. 마이클 잭슨, 신디 로퍼,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다. /Pinterest

이 모든 일이 1984년에서 1985년으로 넘어가는 한 달 남짓 기간에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벌어졌다. 팝 스타 46팀를 한 자리에 불러모은 건 절묘한 택일(擇日)이었다. 미국 주요 대중음악상인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시상식날에 맞춰 행사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스튜디오를 잡은 것이다. 공연일정 등으로 이날 각각 필라델피아와 시라큐스에 있던 스티비 원더와 브루스 스프링스틴은 미 대륙을 횡단해 로스앤젤레스까지 날아왔다. 이렇게 열정을 보인 두 가수는 노래 중후반부의 클라이막스를 장식한다. 간드러진 원더의 고음과 거친 스프링스틴의 샤우팅 창법이 주거니 받거니 식으로 이어지는 애드리브는 ‘위 아 더 월드’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위 아 더 월드'에서 솔로 파트를 맡아 부르고 있는 리듬 앤 블루스의 거장 레이 찰스. 그는 2004년 타계했다. /Youtube 캡처

모든 참여가수들이 흔쾌히 온 건 아니었다. 반면 참여 가수 중 디온 워윅과 신디 로퍼는 돌연 빠지겠다고 해 제작자들이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이들이 마음을 돌려먹지 않았다면, 로퍼가 ‘워 워 워~’로 시작하며 신경질적으로 앙칼지게 부르던 그 유명한 솔로 파트도 탄생하지 않았을 터.

'위 아 더 월드'에서 솔로 파트를 맡아 부르고 있는 밥 딜런. 그는 대중음악 가수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는 진기록을 세웠다. /Youtube 캡처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없었던 이들의 사연에 대한 사연도 공개됐다. 원래 참여 가수 중에는 프린스도 있었다. 마이클 잭슨과 ‘흑인 남성 솔로 라이벌’ 구도를 이루며 신경전을 벌였던 프린스, 두 사람이 함께 녹음하는 장면에 대한 기대가 컸다. 그러나 녹음이 시작될때에도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멕시코 음식점에 머무르고 있었고, “솔로 기타 연주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면 녹음실로 가겠다”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하다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펑크 낸 프린스의 솔로 부분은 로커 휴이 루이스가 급하게 ‘땜빵’으로 메웠는데, 자존심이 크게 상한 그는 모멸감으로 두 다리가 후들후들 흔들렸다.

위 아 더 월드에서 주거니 받거니 듀엣을 이끄는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스티비 원더(왼쪽부터). 이 노래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Youtube 캡처

백인 여성 디바로 신디 로퍼와 맞수였던 마돈나가 빠진 궁금증도 살짝 윤곽이 드러난다. 연주인이자 음반제작자 나일 로저스는 “일부 가수는 마돈나가 참여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해 마돈나의 동료 평판이 인기와 비례하지는 않았음을 시사했다. 스티비 원더는 “아프리카를 위한 노래이니 스와힐리어 구절을 꼭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이 주장을 되풀이하자, 컨트리 가수 웨일런 제닝스가 못참겠다는듯 헤드폰을 벗어버리고 녹음실을 박차고 나가 분위기가 일순간 얼어붙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나온 ‘위 아더 월드’는 빌보드 핫100(싱글)과 200(앨범)을 석권했고, 그래미상에서 최고부문인 올해의 노래·올해의 레코드를 비롯해 트로피 네 개를 쓸어담았다. 노래에서 솔로 파트를 맡았던 21명 중 마이클 잭슨을 포함해 6명이 세상을 떠났다.

'위 아 더 월드'의 솔로 파트를 맡은 마이클 잭슨. 라이어널 리치와 함께 이곡을 만든 그는 팝의 황제로 군림하다 2009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Youtube 캡처

‘위 아 더 월드’가 메가톤급 히트를 기록하면서 당대 잘 나가는 가수들이 자선 목적으로 함께 노래를 부르는 일회성 프로젝트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위 아 더 월드’에 솔로 파트로도 참여했던 디온 워윅과 스티비 원더는 엘튼 존, 글래디스 나이트 등과 ‘디온 워윅과 친구들’이라는 팀을 이뤄 에이즈 환자들을 위로하는 취지의 노래 ‘댓츠 왓 프렌츠 아 포(That’s What Friend Are For 친구 좋다는게 뭐니)’를 발표했다. 이 노래는 ‘위 아 더 월드’ 이듬해 그래미에서 ‘올해의 노래’상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우정을 노래하는 팝송으로 사랑받고 있다. 1991년에는 걸프전에 참전하는 미국 주도 다국적군과 국제 구호단체들의 헌신을 기리는 팝스타 합창곡 ‘보이시스 댓 케어(Voices That Care, 염려하는 목소리)’가 발표됐다. 유명 작곡가겸 제작자 데이비드 포스터가 곡을 쓰고 셀린 디온·마이클 볼튼·케니 G 등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