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극심한 반대에 부딪힌 사법부 장악을 위한 법 개정을 일단 연기하기로 했다.
27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는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을 통해 “국민 분열을 방지하고 폭넓은 합의를 이뤄내기 위해 (야권과) 대화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월절 휴가(4월 5∼22일)와 다음 달 독립기념일 휴식 뒤 5월 초에 시작하는 의회 다음 회기 때까지 입법 계획을 연기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네타냐후 총리는 “우리는 지금 위험한 갈림길에 서 있다”며 “위기 상황에서는 모두가 책임감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사법 장악’ 입법에 저항해온 야권을 겨냥해 “나라를 갈라놓는 소수의 극단주의자가 있다”며 “하지만 나는 나라를 갈라놓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 반대 측에서는 환영의 입장을 나타내면서도 의구심을 숨기지 않았다. 야권 지도자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만약 입법이 실제로 완전 중단된다면 우리는 진짜 대화를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과거 (네타냐후의 거짓말을) 경험한 적이 있는 만큼 이번에도 그의 말에 속임수가 없는지를 확인할 것”이라고 했다.
여야간 대화를 통한 해결을 촉구해온 이츠하크 헤르초크 대통령은 입법 중단 결정을 환영하면서 “최대한 광범위한 합의가 필요하다. 모두가 책임감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법 장악 입법안에 공개 반대했다가 전날 경질된 요아브 갈란트 전 국방부 장관은 대화를 위한 입법 절차 중단을 환영했다.
미국과 영국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커린 잔피에어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연기 발표는 타협을 위한 추가적인 시간과 공간을 만들 기회로 환영한다”며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조속히 타협안을 찾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영국 외무부 장관도 환영 성명을 냈다.
앞서 네타냐후가 ‘사법 장악’을 강행할 당시엔 이를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었는데, 반대로 이날 저녁 네타냐후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입법을 일시 중단하려 하자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에서 수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입법 강행을 촉구하는 친정부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네타냐후는 우파 리쿠드당, 극우 오츠마 예후디트(유대인의 힘) 등과 손잡고 지난해 12월 우파 연정을 출범해 올해 초부터 대법원의 권한을 대폭 줄이는 법 개정을 추진해 왔다. 이스라엘 헌법에 반하는 의회의 입법을 막을 수 있는 대법원의 ‘사법 심사’ 권한을 사실상 박탈하고, 여당이 법관 인사를 담당하는 법관선정위원회를 통제하는 것이 골자다. 요르단 강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 등 이스라엘 극우가 추진해온 민족주의적 정책 입법에 대법원이 위헌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