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말레이시아 배우 양자경(楊紫瓊·양쯔충·60)이 “나에 대한 전 세계적 관심을, 성차별을 겪는 모든 여성과 약자에 대한 관심으로 돌려달라”고 했다. 아카데미상 수상 다음 날인 13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서다.
그는 ‘8년 전 내 인생을 바꾼 비극들은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기고문에서 8000여 명이 사망한 2015년 네팔 대지진 당시 현장에 있었던 경험을 언급했다. 양자경은 급히 비행기를 타고 안전한 집으로 돌아왔지만 폐허에 남겨진 현지인들을 보며 가책을 느꼈고, 3주 뒤 구호 작업을 돕기 위해 네팔에 돌아갔다고 한다. 1년 뒤엔 유엔개발계획(UNDP) 친선대사 자격으로 다시 네팔을 방문했다.
양자경은 이어 지난달 발생한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을 거론하며 “대규모 재해는 원래부터 가진 게 별로 없는 사람들에게 더 큰 충격을 준다”며 특히 여성 등 기존에 차별받던 집단은 대형 재난의 ‘약한 고리’가 된다고 했다. 그는 “여자아이들은 재난 후 학교에 가장 늦게 돌아가고, 여성은 식수부터 의약품, 직업, 대출 지원도 가장 늦게 받는다”며 “불안한 주거와 치안 속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도 급증한다”고 했다.
그는 근본적 해결책으로 “지역사회와 국내·국제 정치 등 각 레벨에서 여성의 진출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 구조와 정책을 설계하는 과정부터 여성이 참여해야 성적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정보통신(IT)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지만 개도국 등에선 여성이 디지털 격차로 뒤처지고 있다면서, 여성을 위한 디지털 교육과 과학·공학 교육(STEM)에 투자해 안정된 소득 창출 기반을 마련해주자고 제안했다.
양자경은 “난 환갑에 첫 오스카상을 받았지만, 내 경험은 그간 위기의 최전선에서 만난 여성 영웅들의 경험에 비할 수 없다”면서 “묵묵히 지역사회를 재건하고, 아이들과 노인들을 돌보며, 매일 밥상을 차리면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돌아갔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