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유력지 월스트리트저널의 백악관 출입기자인 사브리나 시디퀴(37)가 지난달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격 방문을 동행 취재한 뒤, 키이우를 출발해 폴란드를 달리는 기차 침대칸에서 전동 유축기로 모유를 짜며 기사쓰는 모습. 당시 또다른 풀기자였던 AP통신 기자가 찍어준 사진이라고 한다. 시디퀴 기자는 키이우 취재 당시 넘어져 무릎에 붕대를 감은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

지난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을 앞두고 키이우를 비밀리에 방문할 때 수행단 내에서는 삼엄한 보안 속에 또 하나의 ‘특급 작전’이 진행됐다.

바이든을 동행 취재한 미국 기자가 생후 9개월 된 딸에게 먹일 모유를 짤 수 있도록 배려, 전동 유축기를 소지하게 한 것이다. 백악관은 당시 보안상 이유로 수행단의 휴대폰과 노트북 컴퓨터는 물론 모든 통신 및 전자기기 휴대를 금지했으나, 여기자의 전동 유축기만은 예외적으로 허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백악관 출입기자인 사브리나 시디퀴(37)는 9일(현지 시각) ‘초보 엄마의 전장(戰場) 취재기’에서 이런 내용을 소개했다. WSJ에 게재된 취재기에 따르면, 시디퀴는 육아 휴직에서 복귀한 지 한 달 된 지난달 17일 백악관으로부터 “내일 새벽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에 동행할 단 2명의 풀(pool·공동 취재) 기자에 당신이 포함됐다”는 귀띔을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아기는 남편에게 맡기고 가겠다. 단, 전동 유축기를 사용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시내 중심부에 있는 성미카엘 대성당 주변을 나란히 걷고 있다. 2023.02.21 /AP 연합뉴스

수행단의 휴대폰·노트북 컴퓨터 등 통신·전자기기가 압수되거나 사용 금지된 상황에서 이는 돌발 변수였다. 전자기기는 전쟁터 한복판에 들어가는 미 대통령의 동선(動線) 정보를 적국 러시아에 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아이 엄마인 출입기자단 간사와 백악관 공보 담당자가 나서 시디퀴의 유축기 사용을 허가받았다. 키이우를 방문하는 이틀 일정 동안 모유를 보관할 냉장고를 확보하도록 조율하기도 했다.

시디퀴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과 독일을 거쳐 폴란드에서 키이우로 들어가는 기차 등에서 3시간마다 모유를 짜 냉장 보관할 수 있었다. “푸틴은 틀렸다. 우크라이나를 위한 미국의 약속은 변함없다”는 시디퀴의 바이든 인터뷰와 현장 스케치 기사는 미 정부 보안 인터넷망을 통해 즉각 전송돼 세계에 공유됐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백악관 출입기자인 사브리나 시디퀴와 남편이 워싱턴 DC의 자택에서 딸 소피아를 돌보는 모습. 시디퀴 기자는 2020년 대선 때부터 바이든 대통령을 전담 취재해왔고, 지난달 백악관 풀취재 순서상 바이든의 우크라이나행에 동행하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

시디퀴는 “내 경험은 일하는 여성들이 이뤄낸 성취를 보여준다”며 “특히 옆에 같은 워킹맘들이 있다는 것은 큰 차이를 만든다”고 했다. 그는 “엄마가 된다는 게 직업을 희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엄마라서 더 강한 직업인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며 “훗날 내 딸도 여성이 (사회의 지원 속에서)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알게 되기 바란다”고 썼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미국의 합계출산율은 2021년 기준 1.67명이다. 2007년(2.12명)보다는 떨어졌지만, 한국(지난해 기준 0.78명)의 2배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미국은 국가 보육비 지원이나 아동 수당 등 한국과 같은 육아 지원책이 없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전쟁터를 비밀리에 방문할 때 “자동 유축기가 필요하다”는 여성 기자를 동반할 정도로 워킹맘을 배려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이 때문에 경력단절 여성의 노동시장 재진입이 비교적 쉽다. 여성에 대한 ‘엄마 역할’ 압박이 낮다 는 점이 높은 출산율의 비결로 꼽힌다.

시디퀴 관련 소식이 전해지자 각국 여성 언론인들은 그의 소셜미디어에 찾아와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 시디퀴가 인스타그램에서 자신의 취재기를 공유한 게시글엔 1000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렸다. CNN 앵커 출신 로빈 커누는 “CNN 아프리카 특파원 시절 나는 두 아이와 함께라는 사실을 비밀로 간직했다”며 “16년 동안 많은 것이 변해 기쁘다”고 말했다. 브룩 볼드윈, 버샤 샤르마, 암나 나와즈 등 다른 유명 여성 언론인들도 시디퀴에게 “많은 엄마들의 대표가 되어 줘 감사하다”는 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