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터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15일(현지 시각) 주요 반도체 장비 업체 등 중국 기업 36곳을 수출 통제 목록에 추가했다. 이와 동시에 중국 기업 25곳은 미 정부와 협의를 통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이유로 ‘미검증 목록(Unverified List)’에서 제외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 수위는 그대로 유지하되,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해 중국 정부에 ‘협력할 수 있는 분야에서는 대화를 통해 풀어가자’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미 상무부 산업보안국(BIS)은 이날 “중국 기업 36곳을 16일부터 수출 통제 명단에 추가한다”며 “미국 정부는 이 기업들이 미국의 국가 안보나 외교 정책 이해관계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미국의 제재 대상에 오른 반도체 기업은 중국 국영 반도체 선두 업체인 YMTC(양쯔메모리)와 YMTC 일본 법인 등 3곳이다. 이 외에 고성능 인공지능(AI) 칩을 개발하는 캄브리콘(Cambricon) 테크놀로지와 중국전자과기집단공사(CETC) 계열사 등 21곳과 노광 장비 업체 ‘상하이마이크로전자(SMEE)’ 등 총 36곳이 포함됐다. 미국 기업은 제재 명단에 오른 중국 기업에 부품이나 장비를 수출하려면 미 정부의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사실상 수출이 금지되는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YMTC는 중국 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 등에 별도 허가를 받지 않고 반도체를 공급해 미국 수출 규제를 위반한 혐의로 조사를 받아왔다. 특히 최근 YMTC가 미국 기업 애플과 메모리칩을 거래한다는 보도가 나오자 민주당과 공화당이 동시에 반발했다. 상무부는 지난 10월 YMTC 등을 국가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미검증 목록’에 올렸다. 이 목록에 오를 경우 60일 안에 경고를 받은 기업들이 미국 측에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소명해야 하는데 결국 미국의 제재망을 피하지 못했다.

특히 미 당국은 AI 기술 개발과 관련된 기업 21곳에는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적용했다. 미국 기술, 장비를 사용해 생산했다면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해서도 미국 상무부가 수출 통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규칙이다. 앨런 에스테베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 차관은 “국가 안보를 위해 중국이 AI와 첨단 컴퓨터 등 강력하고 상용화된 기술을 군 현대화와 인권침해에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엄격히 제한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번 제재에 포함된 대표적 AI 칩 기업인 캄브리콘은 중국과학원 산하 연구소에서 출발한 스타트업이다. 미국은 이 기업들 상당수가 중국 공산당이 정부 차원에서 육성한 기업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군 현대화 및 신장 위구르족 감시 및 탄압에 관여했다고 지목된 중국 기업들도 이번 제재 대상에 올랐다. 상무부는 상하이집적회로연구개발센터와 반도체 초미세 공정에 필수인 노광 장비 기업 SMEE 등에 대해 “미국 원천 기술을 확보했거나 확보를 시도해 중국군 현대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중국 내 유일한 노광 장비 기업 SMEE가 블랙리스트에 오르면서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회사인 ASML을 따라잡을 다른 기업이 나올 가능성은 더 낮아졌다”고 했다. 중국항공공업집단공사(AVIC) 산하 연구소, 북경산업기계자동화연구소(RIAMB) 등 7곳도 중국의 극초음속 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 등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제재 대상에 올랐다.

한편 상무부는 이날 미검증 명단에 포함됐던 중국 기업 가운데 규정을 준수한 25곳은 명단에서 제외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미국은 미검증 명단에 올라있는 기업이 60일간의 검증 과정에서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을 경우 수출 통제 명단에 올리는데, 여러 기업이 미국 정부와의 대화로 이를 증명했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전날 “중국 상무부는 이달 초 우한, 상하이, 광둥성 등 여러 곳에 있는 회사에 대한 미 당국자의 실사를 승인했고, 실제 조사도 이뤄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