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시 한 병원 입구에서 유산한 임산부를 기억하라.
일하던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해 사망한 상하이의 간호사를 기억하라.
란저우의 세 살배기 어린이를 기억하라.
우루무치 화재에서의 절망적인 고함을 기억하라.
더 큰 비극이 우리에게 닥칠 수도 있음을.’
지난 11월 26~27일 중국 주요 도시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제로코로나’ 정책을 비판하는 시위가 시작된 이후 웨이보, 트위터 등에 떠돌아다닌 글이다. 장소 불명의 시위 현장에서 한 여학생이 이 글을 큰소리로 읽어내려가는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 몇 건씩 올라오기도 했다. 이외에도 시위대의 절망과 공포가 그대로 담긴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돌아다닌다. 지난 11월 28일 항저우시에서 끌려가는 시민을 둘러싸고 정신없이 들려오는 통곡과 비명 소리, 11월 14일 광저우 거리 한복판을 새하얀 방호복을 입은 100여명의 방역 관계자들이 군대처럼 행진하는 모습을 멀찍이 담은 영상 등이 게시와 삭제를 반복하며 돌아다니고 있다.
PCR 검사와 철저한 거리두기를 주축으로 하는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한 중국 여론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직접적 계기는 지난 11월 24일 신장 우루무치에서 일어난 화재사고였다. 고강도 도시 봉쇄가 진행됐던 우루무치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봉쇄에 쓰인 구조물이 신속한 화재 진압을 방해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참사로 10명이 사망했고 9명이 부상을 입었다. 시위의 도화선은 우루무치 화재가 댕겼지만, 위의 글처럼 2020년 이후 중국 시민들은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할 정도의 강력한 봉쇄정책에 짓눌린 생활을 해왔다. 란저우시의 세 살배기나 상하이의 간호사, 시안시의 임산부는 모두 위급한 상황에서 방역 때문에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거나 유산한 사람들이다.
중국에서 이어지는 시위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상하이, 베이징, 충칭, 항저우 등 대도시를 비롯해 후난성, 신장위구르자치구 등 중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위가 벌어지는 것에 대해 뉴욕타임스 등 외신도 “천안문사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며 주목하고 있다. 상하이에서 열린 한 시위에서 ‘시진핑 하야’ ‘공산당 하야’ 같은 직접적인 정치 구호가 등장한 것도 유례없는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민생고가 불붙인 ‘공산당 반대’ 시위
사실 상황판만 놓고 보면 중국의 코로나19 현황은 그리 나쁜 수준은 아니다. 국제 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 집계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6개월간 1만명 이하의 신규 확진자 상태를 유지해왔다. 다만 지난 11월 9일 이후 신규 확진자가 1만명을 돌파하면서 연일 3만~4만명까지도 확진자가 나오고 있어 당국이 경계 태세에 들어갔지만, 치사율도 아직 높지 않다. 지난 11월 9일 이후 20일간 신규 확진자 수는 51만여명인데 사망자는 7명에 불과했다.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된 이후 치사율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치사율이 점점 낮아지는 상황에서 여론에 불이 붙은 데는 민생고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지역을 전면봉쇄하는 등 강력한 거리두기로 인한 중국 경제 침체가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지난 10월 청년 실업률은 17.9%로 역대 최악의 수준을 기록했다. 알리바바·텐센트 등 대기업들도 고용을 대폭 줄였다. 지난 11월 22일 아이폰 최대 생산기지인 정저우 폭스콘 공장에서 실업자가 될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이 공장 폐쇄에 맞서 공장을 집단 탈출했던 사태는 봉쇄로 인한 민생고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당국이 제로코로나를 밀어붙일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안위로 풀이된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강력한 방역을 하면서 정치적 통제를 할 수 있으니 20차 당대회 전까지만이라도 무사히 지나야 한다는 정치적 욕구가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의료체계를 고려한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사실상 의료체계가 전무한 중국의 농촌으로까지 전염병이 번지기 시작하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다는 우려를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중국 당국이 제로코로나 정책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중국의 의료 체계가 ‘바이러스와의 공존’을 버티지 못할 것이며, 대중들에게 퍼지기 시작하면 폭발적인 확진자 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감염병 전파의 가능성을 없앤다는 측면에서는 사실 이렇게 기계적으로 전파 경로를 모두 차단하고 사회적 움직임을 통제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인정받는다. 실제로 코로나 발병 직후인 2020년 3월 2일 세계적 학술지인 사이언스지는 세계보건기구(WHO)와 중국이 공동으로 발간한 보고서를 인용해 “봉쇄와 감시 등 중국의 공격적인 통제 정책이 치명적인 전염병의 이동 경로를 차단하는 데에는 분명한 효과를 보였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자체적인 산출 통계이긴 하지만, 인구당 누적사망률도 매우 낮은 편이다.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10만명당 누적사망자 수는 36~38명 수준(한국은 588여명)에 불과하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이다. 시민들이 강력한 통제에 협조하기 위해서는 민생 문제와 더불어 과학적 방역이 진행돼야 하는데, 중국의 경우처럼 극단적인 봉쇄조치만 취하며 감염병이 종식되기만을 기대하는 건 공산당 시나리오에서만 가능한 얘기다. 특히 전파가 빨라 확진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는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된 상황에서 이러한 제로코로나는 더욱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비판이다. 홍콩대학교 공중보건 전문가인 벤 카울링 교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중국의 의료체계 상태를 보면 (제로코로나 정책이) 겨울에 닥쳐올 오미크론 웨이브에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며 “한정된 병상에서 확진자 수가 급증해버리면 증상이 아무리 경미해도 위험한 수준의 정점을 찍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내다봤다.
중국과 정반대 스웨덴의 실험
반대로 경제성장과 공공 서비스 제공 등을 유지하며 ‘지속 가능한 방역’을 실험, 실천했던 나라가 바로 스웨덴이다. 중국과는 정반대의 정책을 3년간 펼쳐온 스웨덴의 지금은 어떨까. 자발적 거리두기, 마스크 착용 ‘권고’ 수준의 통제만 했던 스웨덴은 팬데믹 초기인 2020년 초·중순까지만 해도 엄청난 사망자 숫자를 기록하며 실패한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다가 2021년에는 신규 사망자 수가 두 자릿수로 떨어졌고, 세계보건기구(WHO) 집계 결과 2020~2021년 초과사망(코로나 기간에 통상적인 사망 건수를 초과해 발생한 사망) 비율은 10만명당 56명을 기록했다. 스페인(111명), 영국(109명), 독일(116명), 이탈리아(133명) 등 유럽 주요 나라들의 절반 수준이다.
북유럽 이웃 나라인 덴마크(32명), 노르웨이(-1명) 등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교육 등 공공 서비스를 공백 없이 철저히 이어가면서 이러한 성과를 낸 것은 의미가 크다는 옹호의 목소리도 있다. 스웨덴의 의사이자 과학커뮤니케이터인 엠마 프란스는 지난 8월 12일 학술매체 ‘더 컨버세이션’ 기고문에서 “스웨덴의 방역정책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을 위한 것”이라며 “인접국들과는 달리 초등학교 교육 등을 단 한 번의 휴무 없이 이어간 것은 ‘스칸디나비아의 성공’이라 부를 만하다”고 썼다.
물론 좀 더 엄격한 평가도 있다. 스웨덴, 벨기에, 노르웨이, 미국 등의 전문가들이 공저해 지난 7월 15일 업데이트한 논문 ‘스웨덴의 코로나19 대유행 동안 과학적 조언 평가’에는 스웨덴 당국이 정무적 판단에 치우쳐 과학자들의 조언을 등한시했다는 신랄한 비판이 담겼다. 논문은 “정부는 전파 경로를 알리지 않는 식의 독특한 자유방임적 방식으로 팬데믹에 접근했다”며 “생명을 구하는 것이나 증거 기반의 과학적인 접근보다는 (교육 서비스가 훌륭하다는 등의) ‘스웨덴의 이미지’를 지키는 데만 집중했다”고 지적했다. 개인의 자발적인 방역 참여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자발적 관리가 어려운 노인 집단으로 피해가 쏠리게 방치했다는 비판도 꾸준히 불거진다.
국민성 고려한 ‘지속가능 방역’
그러나 극단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스웨덴의 개인주의 정서를 감안하면 이러한 느슨한 통제만이 지속가능한 방역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대중의 협조 등 효율성을 고려했을 때는 충분히 적절한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에릭 웽스트룀 룬드대학교 교수는 2020년 4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스웨덴 국민의 과반 이상(51%)이 당국의 통제가 충분히 강하다고 응답했다는 글을 ‘더 컨버세이션’에 실었다. 심지어 70세 이상 응답자 중 61%는 정부 방침을 지지한다고 답했다. 개인주의가 강하고, 교육과 의료 등 공공 서비스에 대한 높은 기대와 신뢰가 자리 잡은 스웨덴에 적합한 정책을 골라 3년간 시행한 끝에 ‘위드 코로나’에 성공한 셈이다.
그렇다면 숨 막히는 통제에 반기를 들고 나선 중국 시민에게 가장 적합한 대응책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백신 접종’이라고 말한다. 지난 11월 22일 기준으로 중국에서는 80세 이상 인구 중 절반 정도만 1차 접종을 마쳤고, 부스터샷 등 추가 접종을 끝낸 비율은 20% 미만이다. 60~69세 인구 중 완전히 백신 접종을 끝낸 비율도 60% 미만이다. 당국도 접종을 강하게 권장하고 있지만, 특히 농촌이나 고령층을 중심으로 백신 불신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접종률이 낮다. mRNA 백신이 아닌 중국의 시노백과 시노팜의 유효성에 대한 의문도 있다. 지난 11월 28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역학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PCR 검사에 쓰이는 자원을 백신 접종과 교육 정상화 등으로 돌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진핑 주석은 한동안 제로코로나 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보인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의 설명이다.
“중국 정부는 우한에서 바이러스가 퍼졌을 때부터 사실 강력한 시진핑식 방역이 성공했다는 걸 과시해왔다. 서방과 다른 방식으로 성공해왔다는 걸 강조했는데 이제 와서 대책을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 침체가 심각한 지금이 되어서야 방역을 느슨하게 한다면, 진작 대책을 수정해도 되지 않았느냐는 실효성 논란에도 부딪힐 수 있다. 시위대가 직접 당에 맞서는 힘이 되지는 못해도, (극심한 여론의 반대로) 중국 정부가 굉장히 곤란에 빠진 상태로 볼 수 있다.”